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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젊은 검사들이 희망이다 / 이춘재

등록 2006-05-19 19:31수정 2006-06-09 15:58

이춘재 기자
이춘재 기자
편집국에서
‘검찰 인권침해 수사는 관행?’(19일치 13면) 기사를 준비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박석안 전 서울시 주택국장의 죽음을 계기로 ‘검찰의 오랜 수사 관행을 되짚어 보자’는 순수한 의도가 검사들에게 제대로 전달될지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가 나가자마자 “현대차 수사에 흠집을 내려는 의도가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힘들게 수사하고 있는 젊은 검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반응이 검찰 안에서 나왔다.

박씨를 조사했던 검사들은 “강압수사는 전혀 없었다”며 그의 죽음을 수사와 연결시키는 것을 억울해한다. 하지만 그가 남긴 유서나 유족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박씨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상당한 모욕감을 느낀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유서는 원래 주관적인 말을 쓰는 것”이라며 마냥 진상조사를 외면하는 것은 ‘국민의 검찰’이 보여줄 태도는 분명 아니다.

권위주의 시대에 견줘 검찰 수사 관행이 많이 바뀐 것은 사실이다. 2002년 서울지검 강력부에서 피의자가 수사관들의 구타로 숨진 사건이 일어난 뒤에는 고문이나 가혹행위가 거의 사라졌다는 게 변호사들의 ‘증언’이다. 검찰 수뇌부들은 검·경 수사권 문제를 의식한 듯 틈만 나면 검찰이 경찰의 수사권 남용을 막는 ‘인권보호 기관’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일선 검사들은 갈수록 수사하기가 힘든다고 호소한다. 범죄는 점점 지능화하고 피의자의 자기 방어 수법은 갈수록 교묘해지는데, 인권보호라는 틀에 갇혀 피의자를 효과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법원에서는 지나치게 엄격한 증거를 요구해, 뇌물 사건의 경우 확실한 물증이 없으면 기소할 엄두조차 못 낸다고 한다. 쟁쟁한 검찰 선배를 변호인으로 만나면 수사는 더욱 꼬인다. 한솥밥을 먹었던 선배나 동료가 고위 공직자나 재벌 총수의 변호사로 나타나 검찰에서 배운 ‘수사 노하우’를 역으로 활용할 땐, 허탈과 함께 무력감마저 든다고 한다.

지난해 두산그룹 비리 사건을 수사했던 한 검사는 “우리가 누굴 소환하고 어디를 압수수색할지 변호인들이 미리 알고 있는 것 같아 깜짝 놀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이런 ‘힘있는’ 피의자를 만나게 되면 더욱 수사 의지를 불태우게 되는데, 이런 정의감이 때로는 거친 말투나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검사들의 ‘항변’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변호사로 개업한 동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초라한 봉급에다 밥 먹듯 계속되는 야근 속에서도 정의감을 벼리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하지만 검찰 조사를 받던 사람이 모욕감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결심을 할 정도라면, 그것은 더는 정의감이 아니다.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켜야 할 정도로 중요한 수사는 없기 때문이다.

오랜 수사 관행을 따르면 쉽고 편할 것이다. 시행착오가 없기 때문에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로 많은 검사가 쉽게 유혹에 빠진다. 하지만 그것에 안주하다 보면 과학적 수사기법 개발은 요원한 일이 된다.

검찰 간부들을 만날 때마다 “요즘 젊은 검사들은 우리 때와 다르다. 소신이 너무 강해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검찰 간부들에게는 걱정거리인지 모르겠지만, 국민에게는 반가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선배의 말을 무작정 따라하지 않는 젊은 검사들한테서 변화 가능성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쉽고 편한 관행을 거부하고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을 보여주기 바란다.


이춘재 법조팀장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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