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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명왕성아, 잘 있니? / 박용현

등록 2006-09-10 21:41

박용현 24시팀 기자
박용현 24시팀 기자
아침햇발
1. 얼마 전 명왕성이 떠나고, 지구인의 꿈 하나도 떠났다. 해왕성에서도 15억㎞나 더 먼 태양계의 변두리에서 하나의 행성이고자 부지런히 궤도를 달리던 명왕성이 행성의 지위를 빼앗겼다. 너무나 작은 체구, 일그러진 타원형 궤도, 다른 행성들과 어긋나는 궤도면 따위가 흠이었다. “명왕성 퇴출”이라는 한국 언론의 살벌한 배웅 속에,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의 막내를 찾아 밤하늘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 속으로, 명왕성은 떠났다.

2. 우리사회의 가장 변두리에서 한명의 인간이고자 애면글면 살아가다 끝내 ‘퇴출’당하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시설 생활인들이다. 일그러지는 몸으로 남들과 다른 생활 궤도를 살아야 하는 중증 장애인들, 더욱이 돌봐줄 사람조차 없는 이들이 사회의 냉혹한 배웅 속에 시설 안으로 쫓겨난다.

뇌성마비 1급 장애인 박정혁(36)씨는 내내 집에서만 지내다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한 1996년 결국 시설에 들어갔다. ㅇ요양원에서 그는 인간의 지위를 빼앗겼다. 한겨울에도 난방은 하루 한번 잠깐뿐이고 “사람이 먹기엔 너무 고약한” 음식들을 먹으며 수시로 폭행에 몸을 맡겼다. 뛰쳐나오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지만, “너희들이 여기밖에 있을 곳이 있느냐”는 말에 무너지곤 했다. 위문차 방문한 ‘바깥 사람’들에게 하소연해도 “사회와 이곳은 다르지 않으냐”는 대답만 돌아올 땐 더욱 절망했다.

나이 서른셋이 되던 해, 그는 결심했다. 한 대학의 자립생활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 바깥 세상에 발을 내디뎠다. 역시나 바깥도 시설 안과 다름없이 춥고 거칠었다. 한해 뒤 그를 따라 요양원을 나온 전신마비 1급 장애인 여성과 혼인했다. 시범사업으로 이뤄지는 하루 6시간의 활동보조인 서비스가 없다면 이들의 살림은 불가능하다.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들은 바깥 세상을 겪어본 뒤 대부분 돌아가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고 한다. 그러나 박씨는 시설에 돌아가느니 차라리 온몸을 던져서라도 세상을 바꿔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두가지 싸움을 진행 중이다.

하나는 시설생활인들의 인권을 위해. 국고보조금 27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성람재단 이사장이 구속됐다. 바로 박씨가 있던 ㅇ요양원이 속한 재단이다. 그런데 아들이 새로 이사로 들어가고 나머지 이사진도 그대로 남아 있다. 관할관청인 서울 종로구청 앞에서 이사진 해임을 요구하며 장애인단체들이 40일 넘게 농성을 해도 복지부, 서울시, 구청 누구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또 하나의 싸움은 바깥 세상 중증 장애인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장애인단체들은 시설 지원보다 자립생활 지원 정책을 펴달라며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보름 넘게 농성 중이다. 시범사업으로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받아본 장애인들 80%가 “삶의 목적이 생겼다”고 한단다. 평생 집안을, 어쩌면 이부자리조차 떠나지 못하던 삶의 궤도를 벗어나 ‘활동’한다는 게 그들에겐 새로운 행성의 발견만큼 놀라운 일일 테니까. 그러나 정부의 반응은 너무나 소극적이다.

3. 사회복지의 날인 7일 저녁 곳곳의 농성장엔 장애인들이 지친 어깨로 철야를 견디고 있었다. 대통령이 이들의 말에 귀기울이고 국회의원이 농성장을 찾아주고 판·검사들이 앞장서 악덕 시설을 퇴출시키는, 그런 정상적인 세상이 올 확률은 저 캄캄한 우주 공간의 밀도만큼이나 낮은 것일까.

그 절망의 공간을 달린다, 명왕성. 자그마한 명왕성. 초속 4.7㎞로 248년을 달려야 완성되는 멀고 험한 궤도를 하나의 행성이고자 달린다, 푸르게 웃지만 외로운 명왕성.

박용현/24시팀 기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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