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주 언론인
언론인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당선자를 두고 사람들은 말한다. 성실하고 부지런하며 윗사람을 잘 모시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이나 장관 등 그와 일했던 사람들은 그를 아랫사람으로 두었던 것이 행운이었다고 극찬한다.
그는 유엔사무총장이 되면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소신을 보였지만 역량을 보이기도 전에 북한은 핵실험을 했다. 유엔사무총장으로 당선된 그는 한 미국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사회자가 유도심문을 하는데도 유연하게 대처하였다. 강렬한 주장이 담긴 답변을 못 얻어낸 사회자가 왜 한국 언론이 당신을 ‘미끄러운 장어’라고 하는지 알겠다며 불편한 심정을 토로했지만 그는 자신은 항상 언론과 좋은 관계를 맺어 왔다고 답변했다. 동문서답일 수도 있지만 적절하게 자신을 방어하면서 결론을 내는 놀라운 순발력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유엔이 제재 결의를 한 상황에서 한국인이 유엔사무총장이 된 것이 한반도의 평화에 걸림돌이 될지 디딤돌이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위기가 기회라고 한다. 한국인이 유엔사무총장이 된 것은 사태를 반전시킬 기회가 될 수 있다. 워싱턴에서 연 한국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그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문제될 게 없다고 했으며,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대해서도 원칙만 정확하게 답변했다. 현장을 둘러보고 그는 개성공단이 단순히 남북 차원이 아닌 국제적인 화해와 협력, 교류의 장이라는 발언을 한 바 있다. 반전 가능성이 엿보이는 시각이고 그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는 발언이다.
유엔사무총장의 임무는 세계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다. 전쟁은 외교의 실패이고 외교의 실패는 대화의 단절에서 온다. 북핵 문제는 미국과 북한의 대화 단절에서 기인한다. 북한의 핵실험은 위험한 도박이지만 한편으론 나 좀 살려달라는 단말마의 비명이다. 반기문 당선자는 북핵 문제에 관한 전문가다. 어디가 잘못돼 지금의 사태가 빚어졌는지 그처럼 잘 아는 사람도 없다. 이 문제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 유엔사무총장이 된 것과 대처방법은 하늘땅 차이가 날 것이다.
세계평화를 유지하는 책임을 지닌 유엔사무총장은 때로 미국과 대립한다. 자신들의 입맛대로 세계질서를 바꾸려는 미국과 부딪치는 것은 당연하다. 과거 우탄트도 베트남전에 반대했고, 부트로스 갈리도 미국과 사사건건 충돌했다. 그래서 연임이 관례인 유엔사무총장 자리를 거의 빼앗다시피 해서 코피 아난에게 주었지만 코피 아난도 미국의 이라크전을 불법이라 했고, 계속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
반기문 당선자는 모시는 사람마다 찬탄케 한 인물이다. 그가 모실 사람은 미국도 한국도 북한도 아니다. 세계평화, 한반도의 평화정착이다. 외유내강의 전형적인 인물이라는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것은 내유의 모습이었다. 그의 유연함과 노련함, 성실성과 부지런함, 사태에 관한 정밀한 지식, 그가 해 온 인간관계, 이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그가 모실 세계평화와 한반도의 평화를 이루어내 극찬을 받기를 바란다. 진정한 내강의 모습을 보여주길.
어떤 사람들은 이런 상상을 한다. 핵폭탄이 곧 우리의 머리 위에서 터지고 국민과 국토가 잿더미가 되는 상상을, 그래서 동해쯤에서 미국과 북한이 한판 붙어서 북한을 무너뜨려 주기를. 그러나 나는 이런 상상을 한다. 한국인 유엔사무총장이 있는 10년 안에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남북이 통일까지는 안 되더라도 통일의 바탕을 마련하는 상상을. 그는 유엔사무총장으로서 세번째로 노벨평화상을 받게 되는 상상을. 그쪽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소임과 진정성이 있다고 나는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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