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전 경제부총리
조순칼럼
중국·인도를 비롯해 많은 나라의 주요 도시에서 아파트값이 뛰고 있다. 나라마다 양상은 다르겠지만, 우리나라처럼 심각한 경우는 드물 것이다. 한국의 수도권 아파트 문제는 오랜 세월을 두고 깊이 뿌리를 내린 복잡한 문제이며, 그 바닥에는 나라경제 전체의 모순이 깔려 있다. 일각에서는 집값을 잡지 못한다면 내년 대선은 하나마나라고 한다.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압록강의 발원이 백두산 천지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듯이, 우리나라 아파트 문제의 발원을 찾기는 비교적 쉽다. 압록강이 바다로 흐르는 동안 별의별 물을 모아서 큰 강을 이뤘듯이, 아파트 문제도 오늘에 이르기까지 경제사회 온갖 문제를 다 모아서 복합적인 문제 덩어리로 자란 것이다. 한두 가지 단선적인 처방으로 치유될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는 유동성 증가와 인플레 심리, 인구 및 경제활동의 수도권 집중, 금융 낙후와 직접금융 미발달, 교육 평준화와 학군제, 구제금융(IMF) 이후의 저성장과 양극화, 저금리 정책과 주택 담보대출 정착, 택지개발에 관한 토지개발공사·주택공사 등의 불투명한 관행, 행정도시·혁신도시·기업도시 지정과 전국적인 땅값 상승, 정부 정책의 상호 모순 등 많은 문제가 복합되어 있다.
경기가 좋아진 것도 아니고, 집 없는 사람이 갑자기 늘어났을 리가 없는데도, 수도권의 아파트값은 쉴 새 없이 올랐다. 보유세·거래세 등 중과세를 물리는데도 오름세는 더욱 거셌다. 사람들은 정부의 무능을 힐난하면서 당장 손을 쓰라고 다그친다. 다급해진 정부는 부랴부랴 임시 처방을 내놓는다. 이 과정을 여덟 번이나 반복한 후 정부는 이번에는 극단적인 공급확대 정책을 발표했다. 이 아파트가 세워지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이 숨고르기를 하면서 관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의 종말이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새로운 문제의 시발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가격이 한꺼번에 떨어져도 곤란하다. ‘자산 디플레’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가격 인플레보다 더 큰 문제다.
한국의 아파트와의 전쟁은 미국 부시 정부의 이라크 전쟁과 비슷한 면이 있다. 첫째, 두 개의 ‘전쟁’의 뿌리가 깊다. 둘째, 전쟁 상대방이 누구인지도 확실치 않다. 상대방에는 산전수전을 겪은 게릴라 부대가 많아서 정규군을 가지고 이기기가 어렵다. 셋째, 전쟁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도 확실치 않다. 하나의 목표가 달성되기도 전에 또 생소한 목표가 등장하여 전쟁의 양상은 자꾸만 달라진다. 넷째,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이 무엇인지, 아군 사이에서도 의견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 다섯째, 아군 지도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지고, 지도부의 임기마저 가까워지고 있다.
마침내, 미국은 이라크 전쟁의 최종 단안을 내리기 전에 전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로 하여금 전직 야당 의원을 포함한 ‘이라크 연구그룹’을 만들어 대책을 강구하게 했다. 36계 중 가장 좋은 생각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종의 냉각기간을 설정하여 중립적인 인사들로 구성된 ‘아파트 연구그룹’을 만들어서, 좀더 유연한 마음으로 이 문제 해결에 임하면 어떨까. 물론, 이 그룹도 즉효를 내는 묘방은 내놓기 어렵겠지만, 민심을 수렴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아파트 문제는 단순한 아파트 가격 진정의 문제가 아니다. 온갖 경제문제에다, 교육·사회·정치와 살벌한 국민심리가 뒤얽힌 복잡한 문제다. 이 이상 설익은 단선적인 대책을 내놓는 것은 크게 잘못된 유산을 후일에 남길 것이다.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전 경제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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