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동 선임기자
유레카
도조 히데키 등 일본인 에이(A)급 전범 7명에 대한 교수형이 집행된 것은 1948년 12월23일 0시. 성탄절 하루 전인 그 다음날 역시 에이급 전범으로 지목돼 스가모 형무소에 갇혀 있던 기시 노부스케 등 19명이 전격 석방됐다. 미 점령군이 베푼 성탄절 특사였는지는 모르지만 기억할 만한 사건이다.
처형당한 7명 중 총리 출신의 유일한 문관 히로타 고키를 뺀 나머지는 모두 군 수뇌부 인사들. 대부분 만주, 난징, 버마(미얀마), 필리핀 등 침략지역 군 책임자들이었다. 기시는 만주국 간부로 같은 시기 관동군 참모장이었던 도조와 함께 일제 괴뢰국가 만주국의 재계와 군부를 주물렀다. 나중에 “만주국은 내 작품”이라고 큰소리쳤던 그는 도조 전쟁내각에서 상공대신을 지냈으며 도조가 겸임한 군수대신 바로 밑자리 군수차관도 역임했다. 41년 12월1일 대미 결전 방침을 정한 어전회의(대본영연락회의)에도 참석한 그가 어떻게 무죄석방됐을까.
<기시 노부스케>(하라 요시히사)에 다음 구절이 있다. “기소당한 지도자들 중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정치적 역할을 맡았던 기시가 왜 불기소, 석방됐느냐는 문제는 기시가 전후 일본에서 비중있는 인물로 총리 자리에까지 오른 만큼 계속 주목을 끌었다. … 그 자신이 옥중공작을 했기 때문이 아니냐, 또는 그가 미국의 특별대우를 받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은 그 일례에 지나지 않는다.”
기시가 풀려났을 때 나중에 일본 역대 최장수 총리가 된 친동생 사토 에이사쿠는 요시다 내각 관방장관을 하고 있었다. 아베 신조 현 총리는 기시의 외손자다.
또 한 사람의 에이급 전범 미나미 지로. 만주침략 당시 육군대신으로, 종신형을 받았다. 36년 조선총독에 부임한 뒤 6년간 내선일체를 부르짖으며 조선말 사용을 금지하고 창씨개명을 강행하는 등 ‘전조선인의 일본인화’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런 그도 54년에 석방됐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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