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논설위원
유레카
“안 주면 죽는 수가 있고, 너무 적게 주면 수갑을 차는 수가 있다.” 영화 〈타짜〉에 나오는 ‘개평’ 얘기다. 노름판에서 돈을 딴 사람이 잃은 사람에게 나눠주는 푼돈이 개평이다. 관리들의 가렴주구로 삶이 피폐해진 농민들이 희망을 잃고 도박에 절어 살던 조선 후기에 생겨난 말이다. 낱것을 뜻하는 한자 개(個)와 ‘상평통보’의 준말 ‘평’이 합쳐진 것이라 한다. 개평의 도는 엄격하다. 실제 지난 3월 부산에서는 개평을 안 준다고 형제간에 칼부림이 난 일도 있다.
개평 풍습은 왜 생겨났을까? 딴 사람이 잃은 사람한테 감사와 위로의 마음을 담아 주는 것이란 해석은 그리 현실적이지 않다. 〈타짜〉에 나오는 말로 추측건대, 법으로 금지된 노름을 한 것을 입막음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게 옳은 듯하다. 〈타짜〉의 주인공은 딴 돈의 절반을 개평으로 푸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지난해 충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민주노동당 이길용 후보는 ‘개평 정치’란 말을 퍼뜨렸다. 삼성에버랜드가 이재용씨 등에게 전환사채를 헐값에 넘긴 사건 수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른바 엑스파일 사건이 터져 궁지에 몰린 삼성이 8000억원을 사회공헌기금으로 내기로 한 것,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비자금 수사를 받자 1조원을 내겠다고 한 것을 비꼰 말이다. 부당하게 얻은 이득을 다 토해내지 않고 일부를 떼주며 무마하려는 것이니, 그 성격이 개평과 비슷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타결 뒤에도 개평 얘기가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은 농업 피해 대책과 관련해 “수입물량이 늘어 소득이 줄면 국가가 소득을 보전해주고 부득이 폐업을 해야 할 경우에는 폐업 보상을 할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농사를 그만둬도 농민이 자동차공장에 취직할 수는 없다는 데 있다. 불투명한 보상 약속에 “개평 몇푼 받고 입 다물라는 것이냐”는 비아냥이 따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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