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칼럼
한 달 전 ‘정혜신 칼럼’에서 나는 법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썼다. 인혁당 관련 배상 판결에서 스스로 법원 판결의 불법성을 최초로 인정한, 자기교정 능력이 남다른 판사들을 향해서였다. 그런데 이번엔 그와는 전혀 다른 이유로 법관들에게 분노한다. 정몽구, 김승연 회장에 대한 잇따른 집행유예 판결을 보면서 나는 대한민국이 법치 국가가 아니라 그 법을 집행하는 ‘판사들의 나라’가 아닌가 하는 속된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법의 정의 그 자체가 아니라 현실을 고려한 판사의 가치관과 식견, 취향과 아량에 온전히 기대는 나라인 듯해서다. 집행유예 선고의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 강연, 기고 등 이상한 사회봉사 명령을 새로운 법해석처럼 덧붙이거나 마치 재벌 회장에게만 아버지의 정이 있는 것처럼 부정을 강조하는 법원의 판결은 비상식적이다.
하지만 일반 시민의 처지에서 아무리 분노하거나 호소해도, 법관은 법의 정의를 수호한다는 명분 아래 스스로 한점 부끄럼 없이 판결한다는 내적 소신만 있으면 그 어떤 상식이나 여론도 단번에 무력화할 수 있다. 법관의 소신에는 어떤 대항도 불가능하다. 그런 절대적 권위 때문에 혹시 판사들은 법리적 분야에서뿐 아니라 삶의 전 영역에서 스스로를 최고의 판단 전문가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신의 솜씨로 매번 고난도의 심장수술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심장전문의도 심장병 환자의 부부갈등 문제까지 적절하게 봉합할 수 있는 전문가이기는 어렵다.
법원이 두 재벌 회장에게 실형 선고를 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 경제가 위기에 처할 위험이 있다’는 현실적 고려다. 영화 <공공의 적2>의 그 유명한 대사, ‘이 나라가 걱정이구만’ 모드를 벗어나지 않는 중증 나라경제 염려증이다.
정몽구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재판장은 이번 판결을 위해 일일이 택시기사, 식당 아주머니 등 100명이 넘는 서민들의 의견을 들었다고 했다. 그랬더니 정 회장 같은 경제인은 국익을 위해 풀어줘야 한다는 의견이 훨씬 많았단다. 하지만 판결 직후 한 시사잡지가 서민층 100명을 대상으로 직접 조사한 결과는 전혀 다르다. 이번 집행유예를 적절한 판결이라고 답한 사람은 30명뿐인데, 그렇게 대답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재벌회장에겐 실형을 선고해도 어차피 금방 나오게 될 것이므로 그럴 바에는 돈이라도 내놓도록 하는 게 낫다는 식의 사법 정의에 대한 불신 때문에 집행유예를 지지했다. 이처럼 여론조사 하나에서도 전문가와 비전문가는 그 방법과 해석에서 전혀 다른 차이를 보인다. 한 경제학자의 지적처럼 사법부는 경제적 영향이라는 잘 모르는 영역을 살필 게 아니라 법리적 고리로 판결을 내려야 한다.
김승연 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며칠 후 보복폭행 사건 수사관들에게 뇌물 전달을 부탁한 한화그룹의 한 임원은 회사의 재력을 이용해 사건을 은폐·축소하려 했다는 이유로 실형 선고를 받고 법정구속되었다. ‘법 앞의 평등’이라는 법치국가의 근간이 단지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면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이 재벌의 나라, 정치인의 나라, 교수나 성직자의 나라가 아닌 것처럼 판사의 나라 또한 아니다. 우리들은 모두 민주공화국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자기 역할을 분담하고 있을 따름이다.
법관들 처지에서는 법원의 신성한 판결에 딴죽을 거는 듯한 국민들의 발언이 가소롭거나 무지몽매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판단 행위가 판사들만의 독점 영역이라고 간주하는 오만이 없다면 이번 판결이 ‘상식있는 국민을 모욕하는 행위’라는 여론에 대해서 신중하게 귀울이고 판단의 전문가답게, 공정하게 판단해 달라.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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