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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효순칼럼] ‘가장 추운 겨울’과 언론

등록 2008-01-21 20:07수정 2008-12-23 17:17

김효순 대기자
김효순 대기자
김효순칼럼
한겨울에 <가장 추운 겨울>을 읽었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이었던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유작으로 한국전쟁을 다룬 책이다. 핼버스탬은 1972년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을 신랄하게 비판한 <가장 우수하고 똑똑한 자들>을 내 유명해졌다. 26번째 저서가 되는 <가장 추운 겨울>은 베트남전, 이라크전을 다룬 책과 함께 그의 전쟁 3부작을 완결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주석과 참고서적을 포함하면 700쪽이 넘는 이 책은 냉전의 격화, 중국 내전과 공산정권 수립 등 국제정세의 격변 속에서 한국전쟁을 냉정하게 분석한다. 몇 가지 흥미 있는 내용만 간추려 본다.

첫째, 일본 점령군 총사령관과 유엔군 총사령관을 겸했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신화와 허상이다. 1차대전 말기에 이미 별을 달았던 맥아더는 수많은 진급기록을 갈아치운 전쟁 영웅이다. 2차대전 종전 후에는 대통령을 포함해 군부의 누구도 그에게 명령이나 지시를 내릴 수 없는 ‘신적 존재’였다. 공산세력이 한반도에서 도발을 하면 ‘한 손이 뒤로 묶인 상태에서도 처리할 수 있다’고 장담하던 그는 인민군의 남침 소식에 거의 공황상태에 빠졌다는 것이 당시 그를 만났던 존 포스터 덜레스 국무부 고문(아이젠하워 행정부의 국무장관)의 증언이다. 도쿄에서 ‘총독’으로 군림했던 그는 한국전쟁 기간에 단 하루도 한국에서 잠을 자지 않았다. 일본 패망 후 한국의 군정사령관으로 부임한 존 하지 중장이 잇달아 자문 요청을 했을 때도 한국은 자신의 관심사항이 아니라며 방임했다고 한다.

둘째, 맥아더가 중국의 개입 가능성을 무시한 것은 자신의 판단에 대한 과신이 작용했지만, 맥아더 사령부의 정보참모 찰스 윌러비 소장의 편견과 무능 탓도 크다. 맥아더는 그가 지휘하는 작전 영역에서 다른 정보기관들이 활동하는 것을 철저히 배제했다. 북한의 남침이나 중국군 개입 가능성을 경고하는 중앙정보국 등의 보고가 있었지만, 윌러비는 맥아더가 듣기 원하는 정보만 추려서 올렸다. 맥아더는 인종차별 주의자인 윌러비를 ‘나의 사랑스런 파시스트’라고 불렀으며, 윌러비는 퇴역 후 흠모해 마지 않던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 총통의 고문역을 했다.

셋째, 프랑스는 유엔군의 일환으로 대대 병력과 구축함 한 척을 보냈는데, 지상병력은 외인부대가 주축이다. 이들의 다수는 인도차이나에서 식민지 전쟁에 참여했던 직업군인들이다. 베트남에서 호찌민의 베트민군과 겨뤘던 이들이 한반도까지 와서 백병전의 용맹을 떨친 셈이다.

넷째, 핼버스탬의 진면목은 미군과 중국군의 정면충돌을 상세하게 분석하는 데서 나타난다. 1950년 가을 평양 입성 후 성탄절을 미국에 돌아가서 맞는다며 들떠 있던 미군은 10월 말과 11월의 운산·장전호 전투 등에서 공군력과 야포부대 지원이 없는 중국군에게 치명적 기습을 당한다. 당시 미군 관계자들은 중국군의 대규모 매복 공격을 1876년 리틀 빅혼 계곡에서 커스터 장군의 7기병대를 궤멸시킨 인디언식 학살에 비유했다. 핼버스탬은 퇴역군인들의 입을 통해 지휘관들의 오만과 오판으로 전쟁터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모하게 죽어갔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이 책을 정독했던 이유는 개인적 관심사이기도 했지만, 지난해 말의 대선을 앞두고 유력 후보들의 캠프에 전·현직 언론인들이 우르르 들어가 활동했던 행태에 불편한 감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핼버스탬은 작년 4월 이 책의 원고를 최종 탈고한 지 닷새 만에 다른 인터뷰를 하러 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일흔셋 나이로 숨졌다. 우리 언론 풍토와 여건에서 그의 삶이 타산지석이 될 수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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