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무 논설위원
유레카
여야 공천 작업이 거의 끝났다. 물갈이 폭이 커 현역 의원들이 대거 탈락하고 중진들도 공천심사위원회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공천 물갈이라는 집합적 드라마는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지만 당사자들에겐 부당한 명예살인이다. 살아 있되 산 게 아니고, 죽느냐 사느냐 비분강개 사생결단의 심정일 것이다. 집단적 원성이 들린다.
달라이 라마의 처지와 삶의 자세는 이들에게 한 가닥 위안이 될 법하다. 열여섯에 자유를 잃고 스물다섯에 조국을 빼앗기고 40여년 동안 민족의 운명을 걸머진 채 망명객으로 살아온 그는 최근 중국의 티베트 시위 탄압으로 큰 고초를 겪고 있다.
고통스런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도 미소를 잃지 않는 그는, 분노와 미움의 파괴적인 영향으로부터 보호받고 피난처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타인에 대해 인내심과 관대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설파한다. 부정적인 생각들은 우리 마음의 본질이 아니라 마음의 자연스런 상태를 막는 일시적인 장애물로, 긍정적인 마음이라는 교정수단을 이용해 바로잡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더 직설적으로 그는 우리의 증오가 미운 적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격한 증오심이 만들어내는 고약한 결과를 맛보는 쪽은 우리 자신으로, 적은 우리가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는지 까맣게 모른 채 쿨쿨 잠만 잘 자고 있다”는 것이다.
지극히 현세적인 정치판의 격랑에 휩쓸린 이들에게 분노를 다스리라는 설법이 씨가 먹힐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우리가 단순히 객석에서 카타르시스를 맛보는 데 그치지 않고 무대로 올라가, ‘내가 만일 공천에서 탈락한 극중 인물 누구라면’ 하고 처지를 바꿔 몰입 상상을 해 보는 일은 얼마든 가능하다. 세상은 불확실성이 커지는 위험 사회다. 마음공부 격으로 이번 기회에 극한 상황을 대리 체험해 보면 웬만한 일에는 평정심을 가질 수 있으리라. 그러한 평정심은 표의 가치도 높일 것이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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