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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스스로를 가두는 대통령 / 박찬수

등록 2008-04-28 20:54

박찬수  논설위원
박찬수 논설위원
아침햇발
고위공직자 재산공개가 미국에서 본격화한 건 1978년 정부윤리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지자, 여야는 서둘러 공직자의 윤리기준을 높이는 법을 만들었다. 공교롭게도 그 첫 적용을 받은 건 ‘부자 내각’으로 유명한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였다. 레이건 대통령을 비롯해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 부통령, 알렉산더 헤이그 국무장관, 도널드 리건 재무장관, 캐스퍼 와인버거 국방장관, 윌리엄 스미스 법무장관이 줄줄이 백만장자였다. 백악관 참모 가운데도 부자들이 수두룩했다. 논란은 피할 수 없었다. 레이건 행정부 인사들은 “재산이 낱낱이 공개되면서 정치적 부담이 훨씬 커졌다”고 불평했다. 펜덜튼 제임스 백악관 인사수석은 공개적으로 법 개정을 주장했다. 돈 많고 능력 있는 인사들을 공직에 기용하기 어려워진다는 논리였다.

물론 정부윤리법은 바뀌지 않았다. 그 뼈대는 1993년 우리나라에 수입돼, 수많은 각료·청와대 수석비서관·국회의원들의 운명을 갈랐다. 이명박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첫 인사에서 3명의 장관 후보자가 재산 문제로 날아가더니, 이번엔 청와대 수석 한 사람이 사퇴했다. 다른 몇 사람은 지금 칼날 위에 서 있다.

청와대 수석들의 재산 논란이 불거진 직후, 이 대통령은 “지난 두달 동안 청와대는 ‘부자들이 모여 있나 보다’란 인상만 줬지, ‘국민이 바라는 일을 한다’는 이미지를 굳히진 못했다”고 말했다. 땅부자 수석들에 대한 질타라기보다는, ‘일만 잘하면 상관없는데 …’라는 아쉬움의 표현으로 들린다. 스스로 350억원대 자산가인 이 대통령은 ‘돈있는 사람이 능력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누구를 탓할 처지는 못된다. 두 차례 재산 파동의 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 대통령이 특정 집단이나 특정 부류에 강한 호감을 표시하고 코드가 통하는 주변 사람만 기용하면, 그들에 대한 인사 검증은 허술해질 수밖에 없다. 2004년 12월 부시 2기 정부에서 국토안보부 장관으로 지명됐다가, 탈세·비리 등 숱한 문제로 1주일 만에 낙마한 버나드 케릭 전 뉴욕경찰청장이 대표적이다. 케릭이 문제가 많다는 건 많은 이들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백악관 인사 검증을 쉽게 통과했다. “부시가 케릭을 ‘우리 편’이라 불렀기 때문에 철저한 검증 절차가 생략되거나 완화됐다”고 당시 <뉴욕 타임스>가 지적했다.

사표를 낸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의 경우도 비슷하다. 그는 오랫동안 소망교회에서 이 대통령과 친분을 다진 ‘우리 편’이었다. 박 수석이 공직 후보에 올랐을 때 그를 철저히 검증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다. 속도를 중시하고 ‘같은 편’만 기용하다 보면 인사 실패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얼마 전 “청와대라는 공간에 갇힐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형식적 웅장함에선 조선시대 궁궐을 능가하는 청와대 본관에 들어서면 누구나 그 분위기에 압도된다고 전직 장관들은 토로한다. 지금의 청와대 구조는 대통령을 권위의 늪에 빠뜨리기 쉽다. 하지만 대통령을 가두는 건 공간만이 아니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 주변을 온통 종합부동산세 납부 대상자들로만 채우고 1987년 이후 우리 사회에서 자라난 다양한 시민사회 집단과 인사들을 배제한다면, 아무리 현장을 많이 찾는다 해도 이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만의 공간에 갇혀있을 뿐이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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