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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수 칼럼] 이명박이 죽어야 이명박이 산다

등록 2008-06-11 13:47수정 2008-06-11 16:55

장정수 칼럼
장정수 칼럼
편집인

취임한 지 불과 100일밖에 안 된 이명박 대통령이 벼랑끝에 서 있다. 매일 밤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타오르는 분노의 촛불은 좀처럼 꺼질 줄을 모른다. 쇠고기 재협상 요구에서 시작됐던 촛불 시위대의 함성은 이 대통령의 통치 전반에 대한 격렬한 성토로 증폭돼 도심의 밤하늘로 울려 퍼진다. 이 대통령의 퇴진과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거침없이 표출된다.

촛불시위에서 표출되는 민심을 한사코 외면하던 이명박 대통령이 뒤늦게나마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의 면모 일신을 통해 수습하겠다는 쪽으로 돈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구상하는 청와대와 내각 재편만으로 촛불 정국이 해소될 것 같지 않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 자체가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임기 초반부터 이처럼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빠진 이유는 일차적으로 그가 한국사회 변화의 큰 흐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경제활력 회복과 사회적 양극화 해소 등 시대적 과제들의 해결에 필요한 전문적 식견과 비전, 그리고 리더십의 결여도 위기관리 능력의 부재를 초래했다. 삶의 질 문제에 대한 그의 시각도 대다수 국민의식의 질적인 변화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소득 2만달러 시대의 한국 국민은 잘사는 문제를 새마을 운동 시대를 지배했던 단순한 물질적 풍요의 증대가 아닌, 생명·환경·교육 등 삶의 구체적 요소들의 개선 문제로 인식한다. 최근의 촛불시위는 이 대통령의 구시대적 경제발전론에 대한 민중의 전면적 거부의 몸짓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점은 이 대통령이 대통령직 수행을 보좌할 수 있는 유능한 청와대 보좌진과 내각을 꾸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그가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고 수호하는 공적인 제도가 아닌 가족의 사유물로 인식하고 능력과 자질은 무시한 채 가족과의 친소관계를 기준으로 청와대와 내각의 핵심자리에 포진시키는 정실인사를 함으로써 빚어졌다. 고소영 내각, 강부자 내각 등의 비아냥은 여기서 비롯됐다. 가족 권력화의 한복판에 그의 친형이자 전 국회의장인 이상득 의원이 있다.

그는 인사 실패의 책임자로 지목돼 사실상 축출된 박영준 청와대 비서관을 비롯해 권력의 핵심부에 자신의 심복들을 심는 데 성공함으로써 정권의 최대 실세로 등장했다. 시중에서 만사형통(萬事兄通, 만사가 형으로 통한다), 형제정권 등의 야유성 신조어가 나도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집중은 정상적인 권력구조를 마비시키고 부패하기 마련이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이 대통령과 친형, 청와대 비서실장과 박영준 전 비서관 등 5명이 사실상 국가를 통치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쇠고기 파동을 비롯하여 각종 크고 작은 국정 난맥은 그 필연적 산물이었다.

이 대통령이 현재의 위기를 수습하고자 한다면 취임 이후 추구해온 제왕적 국정운영 패러다임의 전면적 전환이 시급하다. 대통령 한 사람이 황제처럼 모든 것을 결정하고 형님과 몇몇 심복들에게 의존하는 집권 초기의 통치 틀이 시대적 변화에 맞지 않는 것으로 판명났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는 먼저 가족 권력화를 깨끗하게 청산함으로써 권력구조를 투명화해야 한다. 자신이 인정한 대로 부동산 투기 등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난 인물들은 이번 쇄신 때 전원 교체함으로써 실추된 정권의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는 그야말로 뼈를 깎는 자기 혁신의 과정이다. 어제의 이명박이 죽어야 오늘의 이명박이 살 수 있는 것이다. jsj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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