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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만민공동회 / 곽병찬

등록 2008-06-16 20:47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 논설위원
유레카
“나는 대한의 가장 천한 사람이고 무지몽매한 자입니다. 그러나 충군애국(忠君愛國)의 뜻은 대강 알고 있습니다. 나라를 이롭게 하고 인민을 편하게 하는 길은 관민이 합심한 이후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1898년 10월 말 열린 2차 만민공동회에서 개막연설을 한 이는 놀랍게도 해방된 천민 박성춘이었다. 그는 천민 중에서도 가장 천대받던 백정이었다. 게다가 단하엔 의정부 참정 박정양 등 정부 대표들도 참석하고 있었다. 만민공동회의 힘은 귀천이 엄연한 신분사회에서 놀라운 민주성을 구현한 데서 비롯했다. 이 자리에서 결의한 헌의 6조는 정부 대표에 의해 고종에게 전달됐다. 내용 중엔 △일본인에게 의부하지 말 것 △외국과의 이권계약을 대신 단독으로 하지 말 것 △언론·집회의 자유를 보장할 것 △칙임관의 임명은 중의에 따를 것 등이 포함돼 있다. 일본을 미국으로 바꾸기만 하면, 최근 촛불집회의 요구와 다를 게 없다.

1차 만민공동회는 3월10일 종로 네거리(보신각 주변)에서 열렸다. 첫날 참여한 시민은 무려 1만여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당시 한성 인구가 24만~25만여명이었으니, 고종은 물론 주재 외교관들도 화들짝 놀랄 만도 했다. 고종은 러시아 군사교관 및 재정고문 철회와 부산 절영도(영도) 반환이라는 만민공동회의 요구를 러시아 쪽에 전달했고, 러시아는 이튿날 이 요구를 수용했다. 일본도 조차했던 월미도를 반환했다.

그러나 조정의 수구 대신들에게 만민공동회는 위험천만한 존재였다.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처음엔 독립협회 지도부를 모조리 잡아 가뒀고, 이어 정치깡패(보부상 조직)를 동원해 폭력으로 진압했다. 약발은커녕 반발만 커지자 12월 말 결국 군대까지 동원했다. 하지만, 7년 뒤 대한제국은 일제 보호 아래 들어갔고, 10여년 뒤 망했다. 이명박 정부는 어떤 길을 걸을까.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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