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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테크노포비아 / 함석진

등록 2008-07-21 20:07

함석진 기자
함석진 기자
유레카
기술은 편리하지만 사람을 두렵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나온 테크노포비아란 말도 있다. 현대 기술문명과 인간을 논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지만, 거기까지 갈 것도 없다. 모르면 두렵다. 노무현 전 대통령 쪽은 결국 두 손을 들었고, 기록물이 들어 있는 하드디스크를 국가기록원에 반환했다. 그러자 시스템과 서버란 머리 아픈 용어가 등장했다. 하드디스크만으론 자료의 완전한 반납이 아니고, 그걸 읽을 수 있는 ‘이(e)지원시스템’과 서버가 있어야 한다는 정부 쪽의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서버는 뭐 대단한 요물이 아니라 컴퓨터일 뿐이다. 모든 자료와 기록은 당연히 하드디스크에 담긴다. 정부에서 주장하는 컴퓨터 접속기록 파일(로그파일)도 그 안 특정 폴더에 남아 있다. ‘이지원시스템’이란 것도 그 안에 깔린 프로그램일 뿐이다. 기술 분야에서 팩트 왜곡은 쉽다. 그 요물은 군중의 막연한 기술기피증을 먹고 얼렁뚱땅 자란다.

필립 킨드리드 딕(1928~1982)은 대학을 나와 자동차 수리공, 레코드가게 점원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책상에 놓인 타자기는 늘 친구였다. 그렇게 그는 5년 동안 80여 편의 단편소설을 몰아 썼다.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 폴 버호벤 감독의 <토탈 리콜>, 스티븐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우위썬(오우삼)의 <페이첵>이 모두 그의 소설에서 나왔다. 할리우드 영화 문법을 거치면서 휴머니즘 같은 밝은 색깔로 엉뚱하게 채색됐지만, 원작 소설에 끝까지 남은 시선은 두려움(테크노포비아)이다. 과학기술은 끝없이 발전하고 인간은 점점 소외된다. 인간은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고, 그럴수록 시스템은 더욱 정교하게 인간의 자유의지를 묶는다. 소설은 그것을 간파한 인류의 묵시록이다. 기술시대에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하는 진짜 이유다. 수준 낮은 서버 논란 정도로 낭비할 시간이 아니다.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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