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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주 칼럼] 목사님, 부처 믿고 사람 되세요

등록 2008-08-25 19:26수정 2018-05-11 14:57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칼럼
한국 기독교의 불교 비하와 혐오가 시작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박물관의 탱화를 훼손하고, 부처님 머리를 잘라버리는 폭력은 그래도 은밀히 진행되었다. 그러나 최근의 양상은 노골적이고 본격적이다. 개그맨보다 더 웃긴다는 목사가 미국에서 열린 대중집회에서 ‘스님들은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빨리 예수 믿으라’고 했다. 그 목사가 바로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인기와 신망이 있어서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후임으로 거론되었던 장경동 목사다.

개그맨들도 이런 종류의 말실수를 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세상인데, 목사는 이런 말을 해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기독교 장로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격인지는 몰라도 불교계에 대한 모욕과 차별이 이곳저곳에서 노골적으로 벌어져 마음 상해 있는 불교를 향해 종교인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막말을 했는데도 말이다. 어떤 절의 신도회장 격인 불교신자가 대통령이 되고 기독교인들에게 핍박이라 보일 수 있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스님이 나서서 ‘목사님 허튼 짓 하지 말고 부처 믿으세요’ 하면 좋겠는가.

어렸을 때 내가 다니던 교회와 내가 아는 기독교는 이렇지 않았다. 일요일에 집 옆에 있는 정동교회에 다녀올 때마다 키가 한 뼘쯤 커진 듯, 마음도 한층 넓어진 듯 충일감을 느꼈다. 네 이웃과 원수를 사랑하라,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을 내놓아라, 과부와 고아를 불쌍히 여겨라,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이런 말들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모두가 남을 이해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고 남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희생하라는 것이었고 재물에 욕심을 내지 말라는 취지의 말씀들이었다. 그런 말씀을 하는 목사님이 훌륭해 보였고 교회가 아름답고 은혜로웠다.

한국의 기독교가 천박해진 것은 대형교회들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불광동 천변의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급성장한 순복음교회를 처음에는 이단시하던 우리나라의 교회들은 너도나도 순복음교회 따라잡기에 나섰다. 신자를 모으면서 물질의 축복을 약속하고 교세를 확장해서 성전을 크게 지으면 그 큰 성전 속에 성령이 충만해진다는 환상을 교인들에게 심어준 것이다. 교인들의 십일조로 물질의 축복을 충만하게 받은 교회들이 ‘이것 봐라, 너희들도 물질의 축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선교와 개종을 권유하면서 물질의 축복을 앞세우는 것은 진정한 종교일 수 없다. 장 목사는 불교 믿는 나라는 다 가난하다며 잘살려면 예수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동네 아주머니는 자기 교회에 나오라며 불교 믿으면 가난해지고 기독교 믿으면 부자 된다는 단순 논리만 되풀이한다. 병실을 돌며 선교하는 아주머니들은 불교 믿고 병 고친 사람은 없고 예수 믿고 병 고친 사람은 부지기수라며 선교한다. 불교 믿는 나라는 모두 가난하다는 목회자의 설교를 들은 교인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는가. 목회자들이 교세 늘리기에 몰두하면서 목회자들은 천박해질 수밖에 없고, 목회자들이 천박해진 탓에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를 물신 숭배의 풍토가 지배하게 된 것이다.

있던 신심도 달아나게 만드는 이런 망발과 기고만장이 모든 기독교인과 목회자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잘 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국민을 개종시키고 인류의 마지막 한 사람까지 기독교인을 만든다고 해서 세상이 천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전쟁과 기아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물질을 앞세운 선교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목회자나 교인들을 용서해 달라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고통과 함께하려는 많은 기독교인들은 오늘도 간절히 기도한다.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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