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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크메르루주 재판’과 인권 / 조효제

등록 2008-09-18 21:03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세상읽기
이번 주초 세계의 이목이 온통 월가에 쏠려 있을 때 미국 국무부의 존 네그로폰테 차관이 프놈펜을 방문했다. 그는 훈센 총리를 만나 캄보디아에 2400만달러 규모의 경제지원을 약속하면서 크메르루주의 재판을 위해서도 180만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1970년대 초 닉슨 행정부의 캄보디아 폭격으로 15만~50만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미국 쪽의 책임을 묻지 못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역사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크메르루주를 재판할 법원의 정식 명칭은 ‘민주캄푸치아 시기의 범죄 소추를 위한 캄보디아 특별법원’(ECCC)이다. 특별법원은 캄보디아 정부와 유엔의 오랜 협상 끝에 작년에야 업무를 개시했고, 올해가 가기 전에 정식 재판을 열 계획이다. 머잖아 우리는 아시아판 뉘른베르크 재판을 인터넷(cambodiatribunal.org) 동영상으로 방청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5명이 기소되었다. 폴 포트 정권의 국가원수였던 키우 삼판, 외무장관을 지낸 이엥 사리, 악명 높은 고문형무소 S-21의 소장이던 카잉 구엑 이브(일명 두크) 등 고위 인사들이다. 킬링필드의 주범인 폴 포트는 이미 십년 전에 숨졌고 나머지 잔당들이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 특별법원은 크메르루주가 집권한 1975년 4월17일부터 그들이 몰락한 1979년 1월7일 전날까지 일어난 반인도적 범죄 및 전쟁범죄에 책임이 있는 고위층만을 단죄한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당시 강제이주·강제노동·질병·기아·고문·처형 등으로 대략 170만명이 희생된 것에 대해 피고들은 최저 5년형, 최고 종신형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특별법원을 바라보는 국제 인권운동계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우선 재판의 인적 구성과 재원 마련에서 불협화음이 들린다. 캄보디아와 유엔이 공동 운영하는 ‘혼합형 재판’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회의가 적지 않다. 캄보디아·프랑스·뉴질랜드의 판사들, 캐나다·프랑스의 검사들, 영국·네덜란드·프랑스의 변호사들이 효율적인 재판을 진행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운영경비 문제는 더 심각하다. 올해부터 3년간 운영한다고 보고 애초 5600만달러를 계상했으나 8700만달러가 더 소요될 것이라 한다. 현재까지 일본이 제일 많은 돈을 약정하였다. 재판이 너무 늦게 시작되어 대중의 관심이 준 것도 문제다. 70∼80대 고령의 피고들이 재판을 끝까지 받을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다. 재판의 범위도 좁다. 특별법원은 중국이나 베트남의 외세개입도, 프랑스의 식민지배도 다루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반인도적 범죄의 재판이 역사재판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브룩스 덩컨이라는 인권변호사는 특별법원이 인권유린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크메르 민족주의, 식민잔재 거부, 식민관료 청산 등의 역사관을 성토하는 정치선전장으로 변질될 조짐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 재판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은 인권이 진화해온 역사적 궤적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인권에서 비약적 발전은 없다. 짧게 보면 실망스럽지만 길게 보면 분명히 변화가 온다. 오늘날 반인도적 범죄에 공소시효가 없어지고 그런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누구나 처벌되게끔 된 것이 좋은 증거다. 칠레의 피노체트, 유고슬라비아의 밀로셰비치, 세르비아의 카라지치, 시에라리온의 찰스 테일러가 단죄의 대상이 되리라고 반세기 전에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가? 캄보디아 특별법원은 반인도적 범죄와의 투쟁 역사에서 미흡하지만 의미 있는 한 그루 나무로 기억될 것이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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