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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주 칼럼] 노후자금 거덜낸 ‘펀드’

등록 2008-09-22 19:42수정 2018-05-11 14:57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칼럼
친구인 경제학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목돈을 만들 수 있을까 했더니 ‘돈은 쓰지 않아야 모인다’라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세계 최고의 투자가라는 워런 버핏도 돈은 안 써야 모인다고 한 적이 있는데 … 너무 싱겁고 맥 빠지는 답변이었다. 그는 특히 노후자금은 절대로 위험한 곳에 투자하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주변에서 펀드로 재미를 보았느니 아니니 하는 말이 들려올 때마다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거니 생각하였는데 그게 아니었다. 미국발 금융위기 소식이 전해지면서 여기저기에서 재산이 반 토막이 됐느니 어쩌니 한숨 소리가 들린다. 근검절약의 화신처럼 살았던 한 친구는 어떻게 하면 좋겠냐며 울먹였다. 이자소득이 너무 적고 집 담보 대출도 안 돼서 적금을 깨고 보험을 해약했는데 은행의 창구직원이 자신을 꼬였다고 한다. 딸 결혼시킬 때 의가 상할 정도로 인색하게 굴면서도 죽을 때까지 네 신세 안 지고 살려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던 친구다. 뭐에 홀리지 않았으면 원금 손실의 위험을 감수하고서 투자를 했을 리가 없다. 지금 돈을 빼면 안 될 것 같다, 좀 기다려 보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만난 은행원도 위험성에 대한 경고를 하지 않았다. 몇 해 전 펀드 가입이 전염병처럼 돌 때 은행의 창구직원이 기백만원에 불과한 잔고를 보면서 펀드 가입을 권유했다. 원금은 절대로 안전한 곳에 투자를 한다는 것과 수익률이 높은데 보통예금 통장에 넣어둘 필요가 어디 있냐는 것이었다. 돈이 생길 때마다 넣으면 된다, 언제든지 찾아 쓸 수 있다고만 했다. 하긴 월가의 연쇄파산은 은행원들이라도 예상 못 했을 것이다. 그래도 의심쩍은 눈으로 보는 나를 어리석은 사람 취급을 했다. 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귀빈실로 들어가서 전문 투자상담가와 의논을 하는 것 같았지만 창구직원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서 안 하겠다고 했다.

노후자금이란 손에 꼭 쥐고 알사탕처럼 살살 녹여 먹어야 하는 것인데 날름 깨뜨려 먹게 한 꼴인데, 이런 경우 은행과 은행원에게 책임이 없는 것인지 친구인 경제학자에게 물었다. 당연히 있다고 했다. 외국의 경우 ‘투자 적절성 심사’라는 것이 있어서 부적절한 권유로 판명이 날 경우 투자에 따른 손해를 금융기관이 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개인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고 네가 돈 벌고 싶은 욕심에 한 짓이 아니냐며 권유할 때와는 전혀 다른 표정을 짓는다고 했다. 투자자 보호 장치를 만들어 놓지 않고서 모든 금융규제를 풀면 결국은 노인들이나 금융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당하게 되어 있다고 말한다.

보통 사람들은 은행은 안전하고 은행원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창 펀드 광풍이 불 때 은행원들은 노인정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 모아놓고 건강식품을 비싸게 팔고 튀어버리는 것 같은 삐끼 노릇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투자상담가도 자격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며칠 교육시키고 창구직원들을 독려해 실적 올리기에 나섰던 것이 은행이다. 은행만이 아니다. 자산관리 전문가, 투자기관들이 광고를 통해 펀드 가입이 국력이라는 식으로 북 치고 장구 치고, 여기에 언론도 가세했다.

티끌 모아 태산을 만드는 것은 피곤하다. 누구나 있는 돈을 뻥튀기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국민이 저축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이 이번 월가의 금융위기에 상대적으로 큰 타격을 안 입은 것을 보면 역시 절약하고 저축하는 것이 왕도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축을 조금씩 꺼내 쓰다가 예순다섯 살이 되면 역모기지론을 이용하라는 것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공통된 노후설계다. 집을 유산으로 물려주길 기대했던 아이들을 설득해야 하는 일이 남았지만 말이다.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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