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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탈민주 시대의 도전 / 조효제

등록 2008-11-20 19:57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세상읽기
얼마 전 외부 강연 자리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다. 이명박 정부가 ‘민주적’인가? 우문 같기도 하고 현문 같기도 하고 강사를 떠보려는 것 같기도 한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질문자의 심정에 공감한다. 그런데 현 정부가 완전히 반민주적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지나친 평가일 것이다. 적어도 보통사람들이 이해하는 민주정치와는 차이가 나는 해석일 수 있다. 하지만 현 정부는 민주적이지도 않다. 이제 겨우 전체 임기의 15%를 넘긴 시점에서 민주적 관행과 제도를 얼마나 많이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는가. 한마디 더 하자면, 현 정부는 민주주의에 대해 관심조차 없는 것 같다. 즉, 우리는 대단히 독특한 성격의 정부를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완전히 반민주적인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민주적인 것은 더더구나 아닌,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에 ‘관심도 없고 상관도 하지 않는’ 정부 같다”라고.

정치학자 벤자민 바버는 최근 금융위기 직후에 쓴 글에서 전세계 민주주의가 ‘탈민주’ 위기에 빠져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바버의 설명을 위의 해석과 연결시켜 본다면 우리는 반민주 시대를 거쳐, 민주 시대를 지난 후, 탈민주 시대에 진입한 것인지도 모른다. 탈민주 시대의 핵심은 ‘반민주도 아니고 민주도 아니면서 민주주의에 대해 신경을 끈’ 정치 허무주의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일반대중은 무관심으로 호응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민주주의의 삼중고를 겪고 있는 것인데, 이 모든 점이 크나큰 도전이 되고 있다. 탈민주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도 색다르고, 우리에게 인식의 혼란을 초래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마땅한 대응방식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러한 어려움이 초래한 결과들이 당장 눈에 들어온다. 정부·여당이 이렇게 인기가 없음에도 야당의 지지도가 왜 바닥을 기는가? 시민사회 진영의 여러 모색들이 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는가? 부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계급적인 이해관계를 확실히 챙기고 있는데, 일반대중·서민들은 왜 소가 닭 보듯 하고 있는가? 논리적으로만 본다면 시장만능주의에 목을 걸다시피 했던 정부가 월가 사태를 맞아 코가 납작해져 대오각성 해야 옳을 터인데 왜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것일까? 기득권 세력이 하는 행동을 보면 과거의 반민주 시대가 연상되기는 하는데 왜 일반대중은 꼭 그렇게만 받아들이지는 않는 것일까? 시민사회단체 중 일부의 일탈이 왜 시민사회 전체의 침체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는가?

이런 모순적인 상황에 대해 ‘탈민주’ 개념이 적어도 설명의 일부분을 제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탈민주의 공세 앞에서 전통적인 여러 대응방식이 맥을 못추는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탈민주 시대의 복합적인 상황에 대해 반민주 시대의 흑백 패러다임으로 대응하려고 하는 우리 상상력의 빈곤을 성찰할 필요도 있다.

한 가지만 강조하고 싶다. 탈민주에 맞서고 있는 전체 블록의 지적·심리적·인지적 진입장벽을 낮춰야 한다. 현재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민주정치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어떤 새로운 수혈이 간절히 요구된다. 전통적으로 이 블록과 별 관계없던 이들, 그러나 탈민주 시대에 분노를 느끼는 새로운 세대, 이질적으로 여겨질 만큼 자유분방한 새 정신들이 이 블록에 들어올 수 있도록 호의적인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런 노력 없이 한국의 오바마는 나올 수 없다.

바버는 탈민주 시대의 불확실성을 감당하면서 그것을 극복하는 ‘재민주화’의 길을 찾자고 했다. 경청할 만한 제안이라고 본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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