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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언어예절] 한테·더러 / 최인호

등록 2008-12-04 18:38

언어예절
때와 곳을 나타내는 표지로 토씨 ‘에’가 있다. ‘에게/께·한테·더러·보고’는 본디 사람에 한정해 쓰는데, ‘에게서·에게로·한테서·한테로 …’들로 가지를 친다. 이 토들은 동물에도 붙어 쓰인다. 사전 풀이에서 ‘사람이나 동물 따위’에 붙인다고 했다. ‘따위’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식물한테는 붙이지 못하는가? ‘인격’을 기준으로 한다면 모든 의인화한 말에 붙일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의인화까지 가지 않더라도 인격에 준하는 말들이 적잖다. 중산층·서민층 따위 계층, 사장·부장 따위 직책, 세력·집단 …. 아닌 게 아니라 이런 말들에도 ‘에게붙이’를 붙여 쓰는 경향이 많아졌다. 때로 한국·미국·일본, 대구·전남 따위 나라·자치단체, 회사·기구 이름에까지 ‘에게’를 붙여 쓰는데 지나쳐 꼴불견일 때가 많다.

‘한테·더러·보고’는 ‘에게’와 같이 쓰이지만, ‘에게’를 붙이기 어려운 동물·집단·단체에 어울린다. ‘에게’는 특히 ‘사람’에 한정해 쓰이는 토로 굳어진 반면, ‘한테·더러·보고’는 굳어진 세기가 덜한 까닭이다.

대중교통난이 다시 심화되면 그 피해는 (택시에게도→택시한테도) 미친다/ (시민단체에게는→시민단체로서는) 생명과도 같은 도덕성 …/ 은행들이 (기업들에게→기업들한테) 과연 필요한 돈을 제때 풀어주고 있는지 걱정된다/ … 분단 책임을 (대한민국에게→대한민국에) 전가하고/ (고양이에게→고양이한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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