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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백승종의역설] 역사는 봉이 아니다

등록 2008-12-05 19:01

백승종 경희대 객원교수
백승종 경희대 객원교수
백승종의역설
역사적 사실이란 무수한 파편들이다. 역사가들 앞에는 과거에 관한 엇갈린 진술과 시각들, 각자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기억의 파편들만 존재한다. 따라서 역사적 사건은 여러 개의 서사로 재구성될 수 있다. 딱히 어느 것은 역사적 참, 나머지는 허구라고 폄하할 수 없다. 보편타당한 역사적 진실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일제의 식민지배를 한마디로 결론짓기도 불가능하다. 식민지 지배를 “수탈”로 볼 것인가, 아니면 한국의 “근대화”에 대한 기여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로 몇 해 전부터 세상이 시끄럽다. 양쪽 모두 복잡한 역사를 역사가의 입맛에 맞춰 깎아내고 줄여 하나의 구호로 만들어 버리는 작업에 매달린 결과다. 그들은 역사를 에피소드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역사적 서사의 중층성을 강조하고 싶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세상일은 풀어헤쳐 놓고 보면 그 속에 우주가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하나의 점에 불과한 것이라도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 무수한 직선과 곡선이 있다. 역사 속에서 사람들의 호흡을 발견하는 작업, 사람들이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펼친 다양한 생존 전략을 찾아내 꼼꼼히 기술하는 일. 그것이 서사의 부활이다. 사실의 파편 더미를 뒤져 켜켜이 간수된 여러 가지 복잡한 느낌과 다양한 의지 작용을 되살려내기가 쉽지 않겠지만, 그것이 역사가가 할 일이라 믿는다.

20세기 한국은 역사 과잉이었다. 그 시절에는 근대화도 민주화도 역사의 거울에 비추지 않고는 불가능해 보였다. 무슨 일을 하든 역사의 이름으로 축성되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와 역사학은 설 땅을 잃었다. 이제 우리는 역사를 불변의 객관적 진리라기보다 삶의 다중적 진실을 담은 그릇으로 이해할 때다. 역사의 다중적 진실을 캐내려면 해석의 자유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사이비 역사가들이 역사교과서를 칼질하고 있다. 우파의 낡은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그들은 역사가 봉인 줄 안다.

백승종 경희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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