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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시와 겨울 / 함석진

등록 2008-12-08 19:57

함석진 기자
함석진 기자
유레카
시를 쓰는 한 친구가 찾아왔다. 유람이나 하며 살겠다던 친구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됐다. 학원에서 논술 가르치는 일도 둘째를 얻고서 시작했다. 그렇게 싫어하던 양복에 넥타이도 하고 다닌다.

“뭐 하나 되는 게 없다. 생활비는 줄여봤자 티는 안 나고 목돈은 줄줄 나간다. 지난달엔 대출이자 갚느라 보험도 깼다. 돈? 은행 직원이 남들 다 한다고 해서 펀드란 걸 들었다가 다 묶였다. 대체 경제는 어떻게 되는 거야?”

“너도 이제 경제를 말하는구나. 하하!” 사는 것에 예외는 없겠지만, 찌든 시인의 얼굴을 보며 난 서글펐다. 대학시절 시 한 줄로 세상을 호령할 것 같던 아까운 입담 하나 놓쳤다는 아쉬움이 커서였을까?

세도정치가 판을 치며, 세상이 썩어가던 조선 후기. 중인 출신 가객 정수동이 한 대감 집에 묵을 때 일이었다. 대감 딸이 엽전 한 닢을 삼켜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정수동이 나섰다. “그냥 배만 살살 쓰다듬으면 됩니다. 남의 돈 7만냥을 삼키고도 멀쩡한 사람이 있는데, 그깟 한 닢에 사람이 어찌 되겠습니까?” 기에 눌린 대감은 몇 달 전 받은 뇌물을 되돌려 주었다.

양반들과 시회를 벌일 때 일이었다. 썩은 이들과 술을 같이하는 것도 못마땅했는데, 양반들은 자신만 빼고 잔을 돌렸다. 그러자 정수동은 중간에 돌아가는 술잔을 계속 가로채 마셨다. 참다 못한 옆자리 양반이 정수동의 뺨을 때렸다. 정수동은 바로 몸을 돌려 다른 쪽 양반 뺨을 냅다 후려쳤다. 뺨을 맞은 양반이 “뭐 하는 짓이냐?”고 호통을 치자 “저는 뺨을 돌리는 줄 알았습니다”라고 받아쳤다고 한다.

얼마 전 프랑스 법원은 사르코지 대통령이 자신을 저주하는 주술인형 판매를 금지해 달라고 한 청구를 기각하며, 표현의 자유와 유머의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시했다. 기개는커녕 풍자도 사치스러운 요즘 우리다. 시인에게도 긴 겨울이다.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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