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우 선임편집기자
한겨레프리즘
“엠비시가 공정하지 못했으면 그럼 신문들은 얼마나 공정했나?” “이젠 다시 할말도 못하는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그래도 이 싸움은 정권이 이길 것 같아. 권력이 힘을 휘두르는 지금 눈 밖에 나면 생존의 위협을 느끼니까, 입 닫고 살 거야!”
야근을 마치고 들른 서울 마포 공덕시장 한 식당에서 30대로 보이는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잠자코 들었다. 국회 ‘입법 전쟁’과 언론 파업을 두고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는데, 최근 상황을 꿰뚫어보는 통찰에 절반의 위안을, 경제위기에 저당잡힌 분노에 절반의 안타까움을 느꼈다.
친기업(비즈니스 프렌들리)을 내세우며 출범한 이명박 정권은 이제 파시즘 프렌들리로 질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권 출범 이후 민주주의는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허물어지고 있다. 대운하를 비판한 연구원은 징계를 받아야 했고, ‘피디수첩’ 광우병 보도를 수사하던 부장검사는 지휘부 뜻대로 신속하게 기소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옷을 벗고, 아이들에게 시험(일제고사)을 보지 않을 자유를 준 7명의 선생님은 해임되거나 파면됐다. 정부 정책과 다른 의견을 말하거나 정부 방침을 비판하려면 ‘직’을 걸어야 하는 세상이 됐다.
정부와 한나라당의 이율배반은 ‘입법 전쟁’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법치를 강조하면서 법 제정까지 힘으로 밀어붙이는 정권, 그들이 되뇌는 구호는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 다수 의석이 다수결의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는가? 국회 밖의 국민은 ‘금산분리 완화’나 <문화방송>(MBC)을 재벌이나 조·중·동에 전리품으로 줄 수 있는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 의견이 훨씬 많은데도 국회에선 다수당이니까 다수당 마음대로 하겠다고?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경선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당 밖 여론조사였음을 누구나 안다. 그런데 정권을 잡고서는 민의와 여론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다. 지금 그들은 국민들이 문제 법안들을 충분히 검토할 기회를 뺏은 채 밀어붙이고 있다.
“민주주의와 파시즘 사이의 차이가 갖는 진정한 의미를 정의하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충분한 발전을 위한 경제적·정치적·문화적 조건들을 만들어내는 제도다. 파시즘은 어떤 이름으로든 상관없이 개인을 외래의 목적에 종속시키며 진정한 개체성의 발전을 약화시키는 제도다.” 에리히 프롬의 말이다. ‘경제 살리기’라는 깃발 아래 인권도 민주주의도 허무는 이명박 정부의 모습은 어느 쪽과 더 닮았을까.
오바마 당선 이후 우리 사회 한편에서는 ‘한국의 오바마는 어디에 있나?’란 물음이 한동안 회자됐다. 최근 발행된 앨 고어 전 부통령의 <이성의 위기>나 사회비평가 나오미 울프의 <미국의 종말>을 보면, 부시 집권 8년 동안 미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훼손됐는지, 공론장이 얼마나 심각히 위축됐는지 알 수 있다. 양식 있는 미국인들이 부시 행정부의 민주주의 파괴 행위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경고해 왔음도 알게 된다.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이 나오기까지 브레이크 없는 권력과 미국 사회에 대한 성찰이 두텁게 쌓여 왔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우리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는 규칙과 제도라 할 수 있다. 이를 복원하고 인권을 지켜내는 일, 권력의 파시즘화에 방관하거나 용인하는 우리 자신을 성찰하는 일, 이런 노력이 모일 때, 더 나은 삶을 향한 우리들의 ‘담대한 희망’도 커갈 것이다.
정태우 선임편집기자windage3@hani.co.kr
정태우 선임편집기자windage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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