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
유레카
연쇄 살인(serial murder 또는 serial killing)이란 용어는 1966년 영국 작가 존 브로디가 처음 썼다고 ‘죽음에 관한 맥밀란 백과사전’은 적고 있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저서 <한국의 연쇄살인>에서 “1950년대 미국과 영국의 수사관들이 연쇄 범죄라는 표현을 썼다”고 밝혔다. 어쨌든 ‘연쇄 살인’이란 개념의 등장이 ‘현대’라는 시기와 맞물려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1970~80년대 미국 연방수사국(FBI)에서 연쇄살인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활약한 로버트 러슬러는 동료 학자인 앤 버거스, 존 더글러스와 함께 36명의 연쇄 살인범을 인터뷰한 결과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범죄자들이 어렸을 적의 행복한 추억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부모의 학대를 받거나 심한 정서적 외로움을 느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는 연쇄 살인범이 어느날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출현하는 미치광이가 아니라, 성장 과정이나 사회적 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시사한다.
표창원 교수는 그의 책에서 “경제성장과 사회복지가 균형을 이루고 사회공동체의 응집력이 크게 흐트러지지 않은 북유럽이나 중부 유럽의 선진국에선 연쇄살인 사례를 발견하기 어려운 반면, 옛소련이나 콜롬비아 멕시코 남아공 등 극심한 사회혼란을 겪은 개발도상국에선 미국 못지않은 연쇄 살인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적었다. 연쇄 살인을 단지 ‘사회가 발전하면서 나타나는 피할 수 없는 범죄’로 치부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미국에선 연쇄 살인범에 관한 수많은 연구가 이뤄졌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 불모지에 가깝다. 우연히 범인을 잡은 뒤 자백으로 연쇄 살인을 밝혀내선, 비슷한 사건의 재발을 막을 수 없다. 우리도 연쇄 살인에 대한 학문적 연구와 수사기법 축적에 비상한 노력을 기울일 때가 됐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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