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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다빈치형 인재의 걸림돌 / 정태우

등록 2009-03-26 20:00

정태우 선임편집기자
정태우 선임편집기자
한겨레프리즘
다빈치형 인재, 글로벌 리더, 알바트로스 국제화, 네오르네상스 … 최근 대학들이 앞다퉈 도입하고 있는 입학사정관제 방식의 대입 전형 계획이다. 드러난 성적 외에 학생들의 잠재력과 창의성, 인성과 열정 등을 고루 평가해 숨은 인재를 발굴하겠다는 취지다. 돈 많은 부모 밑에서 공부 외에 몇 가지 소질을 계발한 아이들이 혜택을 볼 것이라는 우려와 고급 사교육을 부추겨 강남불패를 더 공고화할 것이라는 비판도 터져 나온다. 모호한 기준 때문에 교육 현장에선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몇몇 대학은 입학사정관제 전형 요건으로 ‘총학생회장 등을 지낸 자로 리더십이 탁월한 자’, ‘토익 900점 이상인 자’, ‘일본어 능력시험(JLPT) 1급인 자’ 등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몇몇 아이들을 제외하면, 학교교육만 받은 아이들에겐 입학사정관제를 통한 진학의 문도 바늘구멍처럼 좁아 보인다.

이처럼 공정성과 신뢰성이 의심받고 있는데도,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입학사정관제가 공교육을 살릴 것이다”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대학과 고교 현장의 엇박자를 보면, 외국 제도를 들여올 때 저질러온 잘못들, 제도의 외피만 들여와 본래 취지는 망각하거나 제도가 기능할 수 있는 조건들에는 눈감아 버리는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입학사정관제는 과연 공교육을 살릴 수 있을까? 입학사정관제를 통해서 성적 이외의 잠재력을 지닌 인재를 선발한다면서 초·중·고생을 획일적으로 평가하고 성적순으로 줄세우는 일제고사를 밀어붙이는 모습은 자가당착이다. ‘잠재성과 창의성’을 대학입시의 새 열쇠로 제시하려면, 그에 걸맞게 공교육 틀 안에서 아이들이 스스로의 잠재력과 창의성을 발견하고 키워갈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야 할 것이다. 교육부가 이를 위해 어떤 대책을 내놓았다는 이야기를 아직까지 듣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하나의 정답’만을 고르게 하는 시험을 획일적으로 강제하면서, 다빈치의 후예를 대입 과정에서 발굴하겠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이다. 학원-특목고-명문대로 이어지는 입시 행진에 아이들은 이미 충분히 상처 받고 지쳐가고 있다. 이달만도 네 명의 아이가 성적 비관 등의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던졌다. 중학생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이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는 아찔하기만 하다.

공교육을 살리는 길은 대입제도를 조금 바꿔 화려하게 포장하는 것으로는 해낼 수 없다.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고, 창의성 수업을 늘리는 등의 교육 기반과 교육과정부터 정비해야 한다. 일제고사라는 획일적 평가는 이제 그만 중단하고,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아이들에게 ‘정답 아닌 것’도 상상할 수 있는 자유와 숨 쉴 수 있는 여유를 주자.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말이다.

“모든 논의와 비판을 억압하고 ‘바로 이거야, 이것만이 인간을 구원하는 거야’라고 말한다면, 그리하여 인간을 오랫동안 권위의 사슬에 묶어두고 현재의 상상력에 울타리를 쳐버리면 우리는 실수를 하는 것이다.”

정말 아이들의 창의성과 잠재력을 발견해 세계 무대에 통할 수 있는 인재로 키우고자 한다면, 먼저 공교육 틀 안에서 그에 상응한 경험과 훈련을 쌓을 수 있도록 하자. 질문과 토론을 통해 생각의 힘을 길러주고 상상력을 꽃피울 수 있도록 돕자. 최소한 아이들의 자유와 인권과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자. 이러한 여건이 갖춰질 때 비로소 공교육도 활기차게 살아나지 않을까.


정태우 선임편집기자windage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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