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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니들이 더 걱정이다 / 이계삼

등록 2009-05-22 22:17

이계삼  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이계삼 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세상읽기
아이는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나는 빨간색 사인펜으로 아이가 써낸 논술문에 틀린 표현 몇 개를 지적했을 뿐인데 아이는 창백해졌고, 바르르 떨었다. 지역에서는 수재로 소문난 아이였다. 나는 그 이유를 짐작했고, 아니나 다를까 그 아이가 졸업할 무렵 보낸 편지에는 그때의 일이 한껏 누그러진 추억으로 담겨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면 공부, 글짓기면 글짓기, 항상 최고의 자리에만 섰고 칭찬만 받던 아이였다. 요컨대, 그 아이는 누군가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는 상황 자체를 겪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 5년을 지금처럼 지내고 나면 부자들의 소원인 ‘그들만의 리그’(영어 유치원-사립초-국제중-특목고·자사고-명문대)는 완전히 뿌리내릴 것이다. 많은 이들은 거기에 끼지 못하는 대다수 서민 자녀들의 소외와 박탈감, 그로 인한 교육 불평등을 걱정하지만, 나는 이따위 황폐한 성장 코스에 맞춰 자라날 아이들이 더 걱정이다. 나는 아이들이 근원적으로 선한 존재임을 믿는다. 그들도 지금 당장 놀고 싶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아이들’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부모의 편집증으로 인하여 제 영혼을 다칠 것이다. 남들보다 앞서 나가는 공부, 집안 좋은 아이들끼리의 교류, 부모의 영광을 자기 대에서도 재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밀려나면 안 된다는 강박, 거기서 돋아나는 가시 같은 근심들을 저 아랫것 평범한 삶에 대한 우월감으로 상쇄해 나갈 것이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언젠가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했고, 우리 공교육은 저런 발상에 맞춰 굴러간다. 그러나 어느 철학자가 일갈한 것처럼 그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리지 않겠다고 하면 어떡할 것인가?

그러니까, 교육이란 ‘섞이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교실에는 할 수만 있다면 온갖 아이들이 있어야 한다. 거기에는 남학생도, 여학생도,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못하는 아이도, 갑부집 아이도, 철거민의 자녀도, 다문화가정의 아이도, 이주노동자 자녀도, 장애를 가진 아이도 섞여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장애 학교에서는 그 학교의 전부이던 장애가, 귀족 학교의 전부이던 부유함과 지적 총명함이, 실업계 학교의 전부이던 가난과 일탈이 실은 우리의 인간됨을 구성하는 다양한 배경의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내 존재에 찍힌 가난과 열등의 낙인이, 부유함과 우월의 표지가 실은 별것 아님을, ‘나는 그저 나일 뿐’임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때에야 그는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다.

다 섞이면 하향평준화될 거라고 누군가는 입에 거품을 물 것이다. 아이들을 섞어 키우기 때문에 세계에서 공부를 제일 잘한다는 핀란드 얘기까지 갈 필요도 없다. 하향평준화의 증거도 별로 없지만, 설사 하향평준화된다 하더라도 아이들을 온전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섞어야 한다. ‘못된 아이들’의 영향을 걱정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말이다. 시골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별의별 아이들을 다 겪어봤지만, 그 누구도 자기 소유 건물 지하에 입주한 유흥업소의 월세를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받아드셨던 어떤 분보다는 훨씬 더 양심적이었다. 내가 만난 그 어떤 나쁜 아이도 어느 유력한 언론사주(한 여자 연예인이 죽음으로 고발한 성상납 보도를 두고 펄펄 뛰시는)보다는 회개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 보였다. 그러니까 부모들은 제 자식이 ‘그들만의 리그’에 끼지 못할 것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그런 나쁜 사람들 근처에 가게 될 것을 더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이계삼 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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