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규 논설위원
유레카
일제 강점기에 축구는 식민지의 설움을 토해내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강력한 수단이었다. 그중에서도 경평축구는 유별났다. 1929년 경성중학이 주축이 된 경성팀과 숭실학교가 주축이 된 평양팀이 서울 휘문고보 운동장에서 처음 대회를 연 이래, 서울과 평양을 번갈아 오가며 경기를 했다. 1회 대회만 봐도, 경기가 열린 사흘 내내 7000여명의 관중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뜨거웠다고 한다. 경기 내용도 흥미진진했지만, 몇 명만 모여 있어도 잡아가던 엄혹한 시대에 합법적으로 대규모 군중이 모여 마음껏 목청을 높일 수 있는 마당이었기 때문이다.
첫 대회에선 평양팀이 이기고, 2회 대회는 경성팀이 되갚고 하는 식으로 양팀이 호각세를 보였던 이 대회는 주최 쪽의 사정으로 2년을 거른 뒤 33년 봄·가을, 34년, 35년까지 모두 여섯 차례가 열린 뒤 해방 때까지 중단됐다. 46년 서울에서 다시 재개됐으나, 마침 38선 통행 제한과 함께 이것이 마지막 경평전이 됐다. 통산 전적에선 평양팀이 다소 우세했다.
경평축구는 이로부터 44년 뒤인 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를 계기로 남북통일축구대회란 새 이름으로 부활했다. 남북이 베이징 대회가 끝난 뒤 곧바로 평양과 서울에서 한 차례씩 경기를 벌여 1승씩을 나눠 가졌다. 이후 남북통일축구대회는 남북관계에 영향을 받으며 2002년과 2005년 두 차례 더 열린 뒤 중단된 상태다.
이런 와중에 남북이 월드컵 축구 사상 처음으로 본선에 동반 진출했다. 북쪽의 정대세 선수는 남쪽의 박지성 선수의 이란전 동점골이 북쪽의 본선 진출에 도움을 준 것을 의식해 “박지성 선수에게 감사하다”고 말했고, 박 선수는 “북한 선수들이 열심히 뛴 결과이니 고마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화답했다. 남북의 월드컵 동반 진출이 끊어진 경평축구의 명맥을 다시 이어주길 기대하는 것은 꿈일까.
오태규 논설위원o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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