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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순평 / 정석구

등록 2009-06-29 20:52

정석구 논설위원
정석구 논설위원
삼정 문란이 극에 달했던 조선시대 후기에도 가난한 백성을 생각하는 수령이 간혹 있었던 모양이다. 당시 부농들은 가을걷이 때 작황을 조사하러 나온 아전에게 뇌물을 주고 자신의 논이 재해를 입은 것으로 거짓 보고해 탈세하는 일이 잦았다. 대신 힘없는 농민들은 흉작이 들어도 이를 인정받지 못하고 세금을 내야 했다. 이런 폐단을 막고자 수령이 직접 재해 농토를 둘러보고 거짓 보고된 게 없는지를 일일이 확인하러 돌아다녔는데, 이를 순평(巡坪)이라 했다.

그러나 정약용은 <목민심서> 세정(稅政) 편에서 “이런 짓은 천하의 어리석은 방법”이라고 질타했다. 재해를 입었다고 보고한 논마다 푯말을 세워 경작인 이름 등을 적어놓도록 했지만 거짓이 아닌 게 없고, 전감(관청 등에서 잡일하는 사람)에게 물어도 온통 윗사람을 농락하는 말만 한다는 것이다. 정약용은 “수령이 순평할 때에는 뭇 관속이 옹위하여 따르며 밭머리에 떼 지어 서 있고, 초라한 유생과 노농들은 울타리 밑에서 가만히 비웃으니 수령의 위엄과 명망의 실추가 이보다 더 심함이 없다”고 하였다. 결국 부농들의 탈세는 전혀 시정되지 않았고, 가난한 농민들은 여전히 과중한 세금에 시달렸다. 거기에다 순평에 나선 수령은 백성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정약용은 “순평을 할 때는 수령이 말 한 필에 시동 둘을 데리고 경내를 순행하면서 대체적인 작황만 알면 그만”이라며, 그렇게만 해도 아전의 거짓 보고는 저절로 줄어들고 과도한 민폐를 끼치지 않게 된다고 했다.

‘부자 감세, 서민 증세’ 논란만 증폭시킨 이명박 대통령의 최근 ‘서민 행보’는 ‘어묵대통령’이라는 조롱 섞인 신조어까지 유행시켰다. 가난한 농민을 위한답시고 나돌아다녔던 조선시대 수령과 어려운 서민을 챙기겠다며 부쩍 ‘서민 행보’에 나서는 이 대통령 중 누구의 어리석음이 더 클까.

정석구 논설위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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