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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너는 엄마가 없니?” / 김종엽

등록 2009-06-30 21:21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몇 년 전 봉준호 감독은 정치적 독재의 그늘 속에서 진행된 경제적 근대화가 지방 소도시를 쓸어가는 순간을 <살인의 추억>을 통해 묘사했다. 뒤이어 그는 <살인의 추억>의 용의자 박현규(박해일)가 떠나간 터널과 박두만(송강호)이 마지막 장면에서 들여다보던 논두렁 배수로의 깊은 어둠으로부터 귀환한 <괴물>을 그려냈다. 그리고 <마더>에서 봉준호는 이미 근대화의 물결이 쓸고 간 다음의 어떤 소도시로 우리를 데려간다. 하지만 그곳이 정확히 어딘지는 밝혀지지 않는다. 그 도시는 여고생이 휴대전화 세팅을 조작하고 디지털 사진을 인화하는 사진관이 있는 정보화된 곳이지만 억새밭과 고물상이 곁에 있고 ‘야매 침술사’의 한약방과 달동네와 골프장이 이웃하고 있는, 어쩌면 현재 남한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좋을 그런 곳이다.

<살인의 추억>에서 <마더>에 이르는 동안 그 안에 재현된 가족과 경찰로 대변되는 국가의 모습에는 의미심장한 변화들이 나타난다. <살인의 추억>의 경찰은 그저 두들겨 패서 자백을 얻으려 한다. <괴물>의 경찰은 최신식으로 무장했지만 헛발질만 한다. 그리고 <마더>의 경찰은 격무를 호소하며 적당히 일할 뿐이다. 투박하지만 그래도 범인에 접근해가는 박두만의 열정은 <마더>의 제문(윤제문)에 오면 완전히 사라지고 경찰의 일을 떠맡는 것은 억울한 아들을 구하려는 엄마 자신이 된다. 봉준호의 영화 속에서 국가는 무능하다가(<살인의 추억>) 포악해지고(<괴물>) 그리고 마침내 냉담해진다(<마더>).

더 흥미로운 것은 이런 국가의 변화에 조응하는 가족의 변화이거니와, 적어도 세 가지 변화를 지적할 수 있다. 우선 아버지가 위축되다가 이윽고 소거된다.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은 그래도 가족을 먹여 살리며 아버지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한다. 하지만 <괴물>의 박강두는 아버지라고 하기에도 미안한데다가 괴물로부터 딸을 보호하는 데 끝내 실패한다. 하지만 <마더>에 이르면 그 아버지는 사라지고 엄마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다음으로 <괴물>에서는 강두가 괴물에 의해 죽은 딸 현서(고아성)를 대신해 고아 소년을 입양함으로써 가까스로 가족을 복원한다. 하지만 <마더>에서 가족은 마침내 해체된다. 몸을 팔아 치매 노인을 부양하던 여고생 문아정은 피살되고 엄마가 없던 정신지체아 종팔이는 감옥에 갇히며, 가까스로 가족을 유지하던 엄마 혜자(김혜자)마저 자신의 역할을 내던진다. 끝으로 <괴물>의 강두와 세진 사이에는 정상성이 유지되지만 <마더>의 모자간에는 희미한 광기의 분위기가 흐르며, 그와 조응되게도 <괴물>의 가족은 외부로부터의 적인 괴물에 의해 위협받지만, <마더>에서 가족은 스스로 붕괴한다.

비록 매개되고 변형된 형태지만 이런 변화 속에 어른거리는 것은 전체로서의 우리 사회의 변천에 다름 아니다. 그것이 고통의 심화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병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위기, 특히 정치(politics)의 위기는 통상 부권의 실추로 나타난다. <살인의 추억>에서 <괴물>로의 이행 속에서 아버지의 모습은 극히 위축된다. 그러나 <마더>에서는 그 아버지마저 사라진다. 정치가 붕괴한 것이다. 그때 정치보다 근원적인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이 모습을 드러내거니와, 그것은 모성에 의해 표상된다. 봉준호는 정치가 붕괴한 폐허에 엄마를 소환하지만 그 엄마는 더 이상 정치를 복원할 사회적 통일성의 원천이 되지 못한다. 엄마의 넋 나간 춤사위, 그것이 내게는 돌이킬 수 없이 정치와 사회가 파괴되어가는 이명박 시대의 상징으로 보인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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