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삼 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지난 한 주 동안은 정말, 영화 <올드보이>의 오대수처럼 “누구냐, 넌!”이라고 묻고 싶었다. 신종 플루에게 말이다. 큼직한 마스크로 졸지에 익명의 존재가 된 교복들이 둥둥 떠다니고, 의심·확진환자를 수시로 보고하고, 조금이라도 열이 있는 아이는 집으로 돌려보내고, 역시 마스크를 쓴 교사들이 긴급하게 모여 회의하는 모습들은 영락없는 전시의 야전병원 풍경이었다.
나 또한 머리가 지끈 아파 오고, 얕은 기침만 나도 덜컥 겁이 났다. 사실상 시민권을 박탈당한 채 기피해야 할 존재가 되는 것이 싫었고, 무엇보다 거점병원에 늘어선 기나긴 행렬의 일원이 되어 검사와 결과, 완치에 이르기까지 의료전문가들의 손에 내맡겨지는 사실 자체가 싫었다.
‘의권’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전대미문의 의료 파업을 불사하던 의사협회가 집단 휴교를 권고하는 기자회견을 지켜보면서 맘이 좋지 않았다. 물론 나는 이 기자회견을 자청한 그들의 공공적 선의에 시비를 걸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들이 제안한 집단 휴교, 거점병원으로 일원화된 확진환자에 대한 분산 치료, 타미플루의 병원 내 조제(결국 이 모두는 병원의 수익과 직결되는 일이다)보다 더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기막힌 사태가 어떻게 시작되어 우리에게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런 일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 우리 자신과 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권고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인간의 건강을 다루는 의료인으로서 당연한 사회적 책무가 아닌가.
‘살처분’이라는 기막힌 단어가 있다. 조류 독감이건, 구제역이건, 뭔가가 발생한 지역에서 반경 몇 ㎞ 이내에 있는 모든 닭이나 오리, 돼지들을 산 채로 파묻어 버리는 실로 가공할 일들을 우리는 연례행사처럼 지켜봐왔다. 살처분 직전의 닭이 뭔 일인가 싶어 부리로 자루를 쪼아 빼꼼히 고개 쳐드는 보도 사진을 보며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가슴이 저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 ‘언젠가 자연이 우리를 살처분하리라’는 깨달음이 스쳤다. 우리가 한 일은 언젠가 그대로 되돌려 받게 될 것이므로.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종 플루의 원인체가 된 바이러스가 최초로 발생했다는 미국 남부의 돼지 농장에서, 돼지들이 전세계를 향한 거사를 결행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폐 상피세포에 달라붙은 바이러스를 농장 일꾼에게 내뱉은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돼지들은 다만 도살되기 전까지 꼼짝도 못한 채 사료만 주워 먹었을 뿐이었으리라. 다행히 힘없고 영세한 한국의 축산 농가가 아니라 미국의 초국적 축산기업의 농장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산 채로 매장되는 것만은 면했을 따름이다.
국가권력에게는 재빠른 위기관리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존재감을 부각시킬 기회가 되고, 의료업계에는 현대인의 일상에 관여하는 구속력을 높이는 계기가 되며, 제약업계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고, 학교가 지겨운 아이들에게는 땡땡이를 칠 기회를 열어주는 이 서글픈 재앙, 이것이 오늘날 신종 플루의 풍경이다. 그러나 국가권력도 의료인 집단 그 누구도 신종 플루 그 자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시키는 대로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전전긍긍하면서, 그저 하루빨리 이 소용돌이가 진정되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그사이, 치사율이 60%가 넘는다는 조류 인플루엔자와 높은 전염력을 가진 돼지 인플루엔자는 점점 더 가깝게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육식문화의 광풍과 새만금, 4대강을 위시한 철새 도래지의 대규모 파괴로써 말이다. 자연은 신종 플루를 통해 이 가공할 재앙을 향한 경고등을 크게 한번 깜빡인 것이리라. 모든 것이 너무 늦지 않기를 ….
이계삼 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이계삼 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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