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기자
일본 <후지텔레비전>이 일요일 오후 6시 반부터 30분 동안 방영하는 ‘사자에상’이란 애니메이션은 일본의 ‘국민 프로그램’이라 이를 만한 장수 프로다. 다이와증권은 지난해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이 프로그램의 시청률 추이를 면밀히 살펴봤다. 그랬더니, 도쿄 증시의 토픽스지수가 줄곧 떨어지는 것과 반대로 이 프로그램의 26주 이동 평균시청률은 17%에서 올해 3월에 20% 가까이로 올라갔다. 경기가 나빠져 일요일 저녁을 집에서 보내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그 시간대 인기 방송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올라갔다는 설명은 아주 그럴듯하다.
경기가 나쁠 때, 가계가 소비를 줄이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불안한 앞날에 대비해 지갑을 움켜쥐고 잘 열지 않는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지갑을 닫을 때는 소비심리를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가계의 소득이 줄어 소비가 위축되는 경우라면 처방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얇아진 지갑을 다시 채워줘야만 안정적인 소비 회복, 경기 회복이 가능하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터지기 전 경기가 나빠졌을 때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정부가 쓴 대책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지갑이 두꺼워졌다’는 착각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쉼 없는 집값 상승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가계는 겁없이 빚을 내어 소비를 늘렸고, 지갑은 점점 더 얇아졌다. 그러나 집값 거품이 터지고 미국인들이 빚 갚기에 나선 지금, 소비 회복이 언제 본격화할지는 아득하다.
세계 금융위기 뒤 우리나라 가계는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 통계청이 지난주 발표한 3분기 가계 동향 조사 결과를 보면, 가계의 월평균 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1.4% 감소했는데 소비지출은 3.0%나 늘어났다. 지갑은 얇아졌음에도 빚을 내서 소비를 늘리고 있는 것이다. 빚에 기반한 정부 지출과 가계소비로 경기는 빨리 회복되고 있는데, 문제는 지속성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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