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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시인으로 살다 죽다 시가 되는 일 / 김민정

등록 2009-12-23 22:00수정 2009-12-24 09:55

김민정 시인
김민정 시인




얼마 전 조의금 봉투를 여러 장 포개 들고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몹시도 추운 날이었다. 혼자였다. 결혼식장은 안 가도 맘이 편한데 장례식장은 안 가면 맘이 불편하니 어떻게든 나 편하겠다는 심보로 서둘렀던 길이었다. 상주와의 맞절에도 발가락 꼬물거리며 쭈뼛쭈뼛하던 내가 “얼마나 심려가 크십니까?”라고 그 빤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데 순간 나 자신에게 닭살이 훅 일었다. 그러니까 나도 결국 그렇고 그런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평소 사업을 크게 벌였던 친구의 아버지인 까닭에 장례식장은 밀려드는 조문객들로 북적거렸다. 근조화환이 배달되어 올 때마다 나는 어디 소속의 누구라고 적힌 리본 글씨를 따라 읽느라 바빴다. 하도 울어 눈이 퉁퉁 부어오른 친구는 밥이 모자라네, 국을 더 시키네, 전화기만 붙드느라 슬픔은 잠시 놓친 듯했다. 연신 목탁을 두드리던 스님도 지쳤는지 잠시 목을 축이시는데 문득 시인 신현정 선생님 생각이 났다. 두 달 전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뵈었던 곳도 바로 이 장례식장이었다.

선생님의 부음을 듣고 시인 선배와 함께 이곳을 찾았을 때 나는 막상 그 썰렁함에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하얀 전지를 반듯하게 덮은 빈 테이블이 다닥다닥 길게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앞에 자리 차지하고 술 한 잔 따라 마시는 이 하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날이 좋은 늦가을 밤이었다. 놀기 만만한 토요일 밤이었다. 핑계라지만 그럼에도 나는 선생님께 너무나도 죄스러웠다. 밥 한번 사줄 테니 얼굴 보자던 선생님과의 약속을 차일피일 미루다 지키지 못한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영정 앞에 내가 만들었던 선생님의 시집 <바보사막>이 세워져 있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선정한 우수문학도서라는 스티커가 표지 앞에 붙어 반질거렸다. 김민정씨, 이런 거 돼 봤습니까, 김민정씨, 참말 부럽지 않습니까. 영정사진 속 선생님은 늘 그렇듯 천진한 얼굴로 웃고 계셨다.

장례식장을 빠져나온 시인 선배와 나는 말없이 창경궁 쪽을 향해 걸었다. 우리들은 술자리가 약속된 홍대 장어집으로 함께 가는 길이었다. 따지고 보면 내 울컥도 실은 참으로 가증스러운 것이 아닌가. 장어 먹을 욕심에 금방 자리를 뜬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쓸쓸하다, 그치? 그러게, 사람들이 많을 거라 생각하시고 일부러 큰 데다 잡으신 것 같은데. 근데 나 좋은 생각 하나 떠올랐어. 뭔데? 시인들 말이야, 죽기 전에 자선시 한 열 편 정도 낭송한 거 녹음해뒀다가 장례식장에 틀어놓으면 어떨까? 좋긴 한데… 너무 슬프지 않을까, 무지 눈물나지 않을까.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에 자기 시 듣고 가면 덜 외롭지 않겠어?

엊그제였나, 커피숍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데 휴대폰 벨이 울렸다. 창에 뜬 이름을 보니 신현정, 그랬다. 허걱, 돌아가신 양반에게 전화라니 이게 무슨 일인가. 놀란 마음에 한 통의 전화를 놓치고 한 통의 전화를 걸었을 때 수화기 너머의 그분은 다행스럽게도 사모님이었다. 우리 양반 이메일도 전화기도 이제 안녕을 고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민정씨에게는 전화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여러모로 고마웠다고 우리 양반이 꼭 전하랬어요, 부디 건강하고요, 좋은 시 많이 쓰세요. 끝끝내 죽어서도 이렇게 시인이시다니, 훗날 나도 이렇듯 누군가에게 시로 남을 수 있을까.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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