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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김구와 안중근 / 정남기

등록 2010-01-03 18:16

정남기 논설위원
정남기 논설위원
1910년 강제적인 한일합병을 앞둔 조선의 정세는 긴박했다. 식민지화가 기정사실로 굳어지면서 독립투사들의 저항도 거셌다. 대표적인 것이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다. 그는 1909년 10월26일 만주 하얼빈역에서 조선 침략의 선봉장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사살했다. 러시아 장교단을 사열하던 이토 히로부미에게 세 발의 총알을 명중시켰다. 그는 1910년 3월26일 뤼순감옥에서 순국했다. 이재명 의사도 1909년 12월 친일파 이완용을 칼로 찔러 중상을 입혔다가 사형선고를 받고 1910년 12월 일제에 의해 처형됐다.

합병 직후엔 ‘안명근 사건’이 있었다. 안중근 의사의 사촌동생 안명근은 무장투쟁을 위해 황해도 일대 부자들로부터 군 자금을 모으다가 밀고에 의해 1910년 12월 체포됐다.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며, 백범 김구도 이 사건으로 15년형을 받았다. 백범은 당시 양기탁 등이 주도한 신민회의 황해도 총책임자였다. 신민회 역시 독립적으로 만주에 무관학교와 독립군 기지를 건설해 독립전쟁을 벌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관심을 끄는 것은 김구와 안중근의 인연이다. 백범은 동학농민군의 접주로 활동하다가 관군에게 패해 황해도 신천군 청계동의 안태훈에게 몸을 의탁한 적이 있다. 안태훈은 개혁파 지식인으로 학식과 재력에다 사병까지 갖춘 지역의 실력자였다. 그의 세 아들 중 맏이가 안중근이다. 안중근만이 아니다. 안중근의 조카 안미생은 백범의 장남 김인과 결혼해 맏며느리이자 비서로 일했으며, 막내아우 안공근도 임시정부의 핵심 참모로 활약했다. 일가족 전체가 독립을 위해 헌신한 셈이다.

한일합병 100년이 됐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우다 쓰러져간 독립투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한번 되돌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정남기 논설위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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