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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레스타베크 / 김영희

등록 2010-01-21 18:28

김영희 기자
김영희 기자
1804년 지구촌에서 노예혁명으로 첫 독립을 쟁취한 아이티인들이 ‘어린이 노예’를 사용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 것은 아이러니다. 이른바 레스타베크(restavek)의 존재다. ‘함께’(avec) ‘머문다’(rester)는 프랑스어의 합성어인데, 다른 집에 기거하며 한푼의 대가 없이 집안일을 도맡는 어린이를 가리킨다. 주로 4살부터 15살까지다. 15살 이상에게 임금을 안 주면 불법이기에 대개 이 나이에 거리로 쫓겨난다.

소수의 집권 흑인층과 물라토가 퍼뜨린 제도지만, 꼭 부잣집만 레스타베크를 두지는 않는다. 가난한 부모들은 아이가 제대로 먹기라도 하길 바라며 조금이라도 형편이 나은 곳이라면 보낸다. 대가족 전통이 강한 이 나라에선 과거에 아이를 다른 집에 보내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아이들은 사실상 노예와 같은 상태에 놓여 있다. 어쩌다 학교를 보내주는 집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장 먼저 일어나 가장 늦게 마룻바닥에서 잠을 자고, 친부모와의 연락은 끊긴다. 폭력·구타도 빈번하다. 시장에선 채찍이 팔린다. 30만명으로 추산되는 레스타베크 중 3분의 2를 차지하는 여자아이들은 성폭력과 학대에 노출된다. 2007년 의회가 이를 불법으로 규정했지만 단속은 없다. 지난해 팬아메리칸개발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30%의 가정이 레스타베크를 데리고 있다.

장 로베르 카데는 1998년 자서전 <레스타베크>를 통해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알린 이다. 그는 “1주일에 7일을 일했다. 누군가 말을 건네기 전 먼저 말할 수도 없었다”고 어린 시절을 회고한다. 그가 세운 재단은 수도 포르토프랭스에는 시골에서 올라온 수많은 레스타베크들이 있다고 밝혔다. 대지진 이후, 홍수처럼 쏟아지는 아이티 사진들 어딘가에 그들이 있을 것이다. 외신 카메라들이 빠져나가더라도, 잊어서는 안 될 얼굴들이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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