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구 선임논설위원
엊그제 때이른 봄비가 제법 촉촉이 내렸다. 한쪽에선 눈발이 날리는 등 아직 겨울이지만 입춘이 지났으니 봄비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이번 비가 그치면 남녘에서부터 꽃소식이 큰걸음으로 성큼성큼 올라올 것 같다.
옛 시인들은 유난히 봄비를 즐겼다. 시성으로 불리는 당나라 시인 두보는 <춘야희우>(春夜喜雨)란 시에서 ‘좋은 비는 그 내릴 때를 알아/ 봄이 되니 저절로 내리네/ 바람 따라 살며시 밤중에 스며들어/ 소리 없이 촉촉이 만물을 적시네…’라며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비를 찬양했다. 지난해 상영됐던 영화 <호우시절>의 제목은 이 시의 첫 구절인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에서 따온 것이다. 고려 말 충신 정몽주도 ‘봄비 가늘어 흩날리더니/ 밤 되자 나지막이 빗소리 들리네/ 눈 녹아 시냇물 넘쳐흐르니/ 새싹은 얼마나 돋아났을까’라며 봄의 흥취를 노래했다.(<춘흥>) 봄날의 정취를 절제된 시어로 깔끔하게 묘사한 짧은 시다.
요절한 조선시대 천재 시인 허난설헌은 봄비를 보면서 자신의 외로운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다. ‘봄비 소리 없이 연못 위에 내리고/ 찬바람 비단 휘장 속 스며들 때/ 시름에 겨워 병풍에 기대 보니/ 담장 위로 송이송이 살구꽃 지네.’(<춘우>) 그는 조선에서 태어난 것, 여인으로 태어난 것,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 등을 원망하며 27살로 불우하고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고아한 정취까지는 아니지만 현대적 정서로 봄비를 노래한 대중가요도 적잖다. 임현정의 ‘사랑은 봄비처럼…’이나 배따라기의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는 즐겨 듣고 불리는 노래다. 7080 세대라면 신중현이나 이은하의 ‘봄비’가 귀에 생생할 것이다. 비 오는 봄날 하루쯤은, 올해 11월1일 20주기를 맞는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을 들으며 보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정석구 선임논설위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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