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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백승종의역설] 국가부채

등록 2010-02-12 16:55수정 2010-02-12 17:53

백승종 역사학자
백승종 역사학자
나라 재정이 고갈되면, 우선 통화가 증발(增發)된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가 그러했고, 조선후기 각급 관청도 상평통보 주조권을 발동해 재정문제를 풀려고 했다. 부작용도 없지 않아, 대원군이 발행한 당백전은 체제위기까지 초래했다. 때로 국가는 화폐의 질을 떨어뜨림으로써 재정 확충을 꾀하기도 했다. 16세기 영국 재무관 그레셤은 이런 꼼수의 문제점을 짚어냈다. 요컨대 조악한 악화가 양질의 화폐를 몰아내고 유통시장을 점거한다는 화폐의 법칙이 그것이다.

재정 부족으로 궁지에 빠진 국가는 대출을 꾀하기 마련이다. 1450년 프랑스의 거상 자크 쾨르는 국왕에게 노르망디 탈환 전쟁자금을 댔다. 그의 재력을 높이 산 샤를 7세는 훗날 쾨르를 고문관에 임명했다. 중세 유럽 각국의 금융업자들도 국가를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했고, 조세 징수권자들도 세금을 선불해 줌으로써 이익을 챙겼다. 미국의 펜실베이니아는 본래 퀘이커 교도인 윌리엄 펜이 영국의 찰스 2세에게 돈을 빌려준 대가로 하사받은 땅이다. 전근대 시기 세계 각국은 재정적자를 이유로 매관매직을 일삼았다. 조선 후기에도 부자들에게 금품을 받고 공명첩을 파는 일이 다반사였다.

국가가 대출을 강요하거나 빌린 돈을 떼먹기도 했다. 고대 중국의 난왕은 부호들에게 전쟁자금을 빌렸으나, 한 푼도 갚지 않았다. 빚 독촉이 쏟아지자 왕은 다락에 숨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 누각을 도채대(逃債臺)라고 부르며 왕을 조롱했다. 15세기 영국 왕 에드워드 4세에게는 악덕채무자란 악명이 붙었다. 국왕이 금품을 갈취하는 악습은 17세기까지 남아, 영국 귀족 존 엘리엇은 대출 요구를 거부한 죄로 감옥에 갇혔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사회학자 루돌프 골트샤이트는 자본주의 국가는 결국 부채에 의존하게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지금 한국의 국가부채도 적지 않다. 수자원공사 등의 공공부채까지 합산하면, 그 규모는 스페인 수준이라 한다.

백승종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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