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라 경제부문 기자
나는 고향이 서울이다. 긴긴 미혼 시절을 누린 덕분에 명절 대이동은 늘 남의 일이었다. 연휴 직후 졸음을 참아가며 열 몇 시간씩 운전했다는 직장 동료나 지인들의 하소연은 어쩐지 허풍선이 남작의 여행기처럼 들리곤 했다.
이번 설엔 결혼을 앞두고 예비 시댁에 명절 인사를 다녀오게 됐다. 시댁은 다행히 서울 근교인데, 생각지도 않게 ‘귀경’ 전쟁통에 휘말리는 일이 생겼다. 대중교통으로 돌아와도 될 것을 시동생 부부가 승용차로 집까지 바래다주겠다는 후의에 기대려던 욕심이 화를 불렀다.
내비게이션은 출발 당시 20㎞ 남짓한 거리이니 30~40분이면 도착하겠다고 친절히 안내했지만, 꽉 막힌 서부간선도로는 내비를 믿었던 우매함을 조롱했다. 차들이 꼬리를 문 도로에선 뻥튀기 장수만 신이 났고, 2~3㎞를 30분씩 걸려 엉금엉금 기어가는 피로한 여정이 꼬박 세시간 동안 이어졌다. 고향 가느라 스무시간이 넘게 운전을 했다는 둥, 너무 졸려서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위험천만한 쪽잠을 잤다는 둥, 예전에 들었던 귀성·귀경 전쟁 영웅담들이 문득 머릿속을 스쳐갔다.
연휴 뒤끝에 들으니 올해 귀경길은 교통체증이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었다고 한다. 명절 연휴가 주말과 겹치면서 귀성을 포기하거나 역귀성을 택한 이들도 있었고,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교통정보를 주고받으면서 막히는 구간과 시간을 요리조리 잘 피한 덕도 있었다는 말이 나온다. 무지한 나로선 극심한 교통체증이라 말할 정도면 도무지 어떠하다는 얘기인지 실감이 가지 않을 판이다.
이런 때면 새삼 관심을 끄는 게 ‘대체 공휴일 법안’이다. 이른바 법정 공휴일인 ‘빨간날’이 주말과 겹쳤을 때, 주말에 이어지는 하루를 대체 공휴일로 쓰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가까운 나라 일본 등이 도입해서 우리한테도 익숙한 이 법안은 나라경제를 걱정하는 정부 부처들과 재계 인사들의 반대로 번번이 좌초된 이력이 길다. 지금도 관련 법안이 7건이나 국회에 상정되어 있지만, 기획재정부 등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영구 미제 법안으로 남을 공산도 크다.
기획재정부와 지식경제부, 재계 단체 등은 생산성 저하와 인건비 부담 증가 등을 반대 이유로 든다. 하지만 찬성하는 쪽은 휴일이 충분하면 내수가 활성화되고, 교통혼잡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우리나라가 고비용·저생산성의 악순환을 깰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솔직히 나는 생산성 논란이 나올 때면 의아해진다. 대개의 직장인들은 명절 연휴 막바지에 길바닥에서 짧게는 네댓시간, 길게는 열시간씩 운전을 하고 녹초가 된다. 그럼에도 일터로 돌아오자마자 ‘쉬지 않고 일해야 잘 산다’며 가열차게 근무를 시작한 열혈 일꾼들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제오늘 졸린 눈을 비비며 커피자판기 앞을 뻔질나게 드나든 평범 남녀들 또한 적지 않다. 어떤 이들은 회사 인근 아지트에서 쪽잠을 자며 땡땡이를 치기도 했을 것이고, 그저 퇴근 종이 울리기만을 목 빼고 기다린 이들도 많을 것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곧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대체 공휴일 입법을 논의한다고 한다. 그러니 남들 다 아는 귀성 고통을 수십년간 실감 못했던 나처럼, 정부 부처와 재계 핵심 인사들이 잘 모를 수도 있는 사실 하나를 살짝 귀띔해 드린다. 경제성장에 매진해야 할 이 땅의 산업역군들은 어제오늘 인건비만 꿀꺽하고 많이 졸았다.
정세라 경제부문 기자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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