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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죽음학

등록 2005-06-08 21:31수정 2006-02-21 18:38

‘죽음학회’가 창립됐다고 한다. 종교학·신학·사회학·사회복지학·보건의료학계가 참여한 창립기념 학술대회가 지난 4일 서울 이화여대에서 열렸다. 학문 연구는 죽음의 비밀에 과연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까?

삶의 한가운데 있는 우리는 자신에게는 죽음이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산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접할 때 비로소 소스라치듯 죽음의 존재를 실감할 뿐이다. 몇 해 전 유달리 가까웠던 어머니의 죽음을 겪으면서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혼란만 절감해야 했다.

어머니는 여든둘이던 가을에 간암이 발견돼 1년 남짓 뒤 증세가 깊어져 병원에 입원한 지 100일 만에 세상을 뜨셨다. 나는 어머니의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매일, 매시간 느꼈다. 어느날 밤, 저녁 때까지도 이야기를 나눴던 어머니의 혈압이 별안간 떨어지고 있다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의식이 흐려지고 몇 시간, 마침내 의사는 심장박동이 멎었음을 확인했다. 말없는 어머니를 지키던 식구들은 얼마 안 있어 도착한 구급차에 어머니를 실어야 했다. 영안실이라는 이름의 냉동실에 어머니를 넣고, 그것을 확인하는 서류에 서명을 하고 돌아서는 그 황당함이란. 바로 몇 시간 전에 나와 이야기하던 어머니는 어디로 가신 것인가. 내 손으로 차가운 냉동실에 넣은 그 분이 어머니인가.

의사 친구를 만나 이야기해 봐도, 죽음에 관한 글을 이것저것 읽어봐도 ‘도저히 알 수 없다’는 느낌에서 한걸음도 더 나갈 수 없었다. 그 때 읽은 것 가운데 유일하게 이해되고 내 마음에 와 닿은 것은 이런 것이었다. ‘무’로 돌아간다는 본질적인 두려움말고,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들이 죽음을 맞는 이들을 더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사랑만이 그들을 좀더 편하게 떠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지영선 논설위원 ys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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