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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촛불로 인해 20년 만에 얻은 답 / 우희종

등록 2010-05-04 22:25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미국 쇠고기 건으로 촛불이 서울광장을 메운 지도 2년이 흘러 이제 정부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드러났지만 여파는 아직 진행형이다. 당시 문제점을 지적했던 ‘피디수첩’에 대한 1심 재판부의 무죄판결이 있은 뒤 한참 만에 이를 비난하는 대한의사협회의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지적사항 중에 그나마 과학적인 내용은 인간 광우병과 관련 있는 프리온 유전자에서 한국인에게 많은 129번 MM형에 대한 것이다. 요지는 인간 광우병과 관련된 다른 유전자도 있는데 사법부가 129번의 MM형만을 고려한 것이 심각한 오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직능단체인 의협이 과학(science)과 연구(research)가 다르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과학적 사실인 129번과 연구가 진행중인 다른 유전자를 동일하게 취급함으로써 과학의 합리적 논의와 거리가 있는 의협 성명서는 과거 미국에서 경험한 일을 떠오르게 한다. 20년 전 필자는 하버드 의과대학 외과의 종양학 교실에 재직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 전역에서 높은 경쟁을 뚫고 하버드 의대에서 전문수련의 훈련을 받는 의사들 중에 임상을 마다하고 1년간 실험실에서 연구하며 논문 쓰는 이들이 있었다. 과학실험을 해본 적도 없어 야단을 맞아가며 밤에는 가족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굳이 연구를 선택한 이들의 생활은 힘들어 보였다. 이들의 실험을 지도하면서 알게 된 것은 미국 의과대학에서 교원으로 남으려면 실험실 연구경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의대에서 임상교수가 되려면 과학연구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으나 그 답을 준 것이 20년 후 촛불로 인한 의협의 성명서다.

촛불 당시 정부의 졸속타결을 합리화하기 위해 등장했던 이들은 입맛에 맞는 낡은 내용을 논문에서 찾아내 과학적 사실로 주장하였다. 당시 그런 행태를 보면서 과학적 사실을 호도해서 일반국민을 의도적으로 혼동시키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법부를 비난하는 의협 성명서를 보면서 당시 그렇게 주장했던 이들은 어쩌면 몰랐을 뿐이지 나름대로 진정성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훌륭한 과학자인 의사도 많지만 대부분의 임상의사들은 과학에 의거한 환자 치료법을 배우나 직접 본격적인 과학연구를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학술지에 실린 내용이라도 학계에서 인정된 내용은 과학이지만, 연구논문 속의 많은 내용은 과학을 위한 과정일 뿐이다. 연구 내용을 다룬 언론보도만 보면 암은 곧 정복될 것 같아도 여전히 정복되지 않는 것과 같다. 과학적 내용으로 논란이 될 때 학술지에 있다는 것만으로 연구가 진행중인 내용을 일반인에게 과학처럼 제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과거 촛불 때 정부 쪽 전문가들이 했던 행태이며, 과학과 연구의 차이를 혼동했기 때문에 국제학계에서는 너무 당연한 내용으로 우리 사회가 혼란을 겪은 이유이다. 의사도 이런데 일반인이야 얼마나 혼동되었을까.

이번 의협 성명서에서 나타나듯 우리 사회의 이런 무지함은 기본적으로 과학자 집단의 책임이지만 과거 국민과 참여정부의 몫도 적지 않다고 본다. 정부 홍보의 일환으로 스타 과학자들을 동원해서 과학홍보대사나 과학전도사라는 이름으로 과학이 지닌 산업효과나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과학장사꾼의 모습만 연출했을 뿐, 과학과 사회의 관계나 과학과 연구의 차이를 알려 일반인들에게 올바른 과학문화를 전하는 데에는 소홀했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경제적 목적으로 학문을 왜곡하는 정권이 없는 것이 우선이지만, 지금이라도 우리 사회에 진정한 과학문화를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만 배아줄기세포나 광우병 사태와 같은 불필요한 혼란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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