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선 논설위원
세계적인 디자이너 필리프 스타르크는 2007년 한 연설에서 “디자이너란 전적으로 쓸모없는 것”이라는 폭탄발언을 했다. 디자인이 세계적 화두가 된 시대에 이런 발언을 하게 된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문명 상태에선 나 같은 사람(디자이너)이 수용될 수 있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야만으로 떨어질 수 있다. 야만 상태가 되면 아름다운 의자나 아름다운 호텔 디자인은 잊어야 한다. 심지어 예술도 잊어버려야 한다. 일에는 우선순위와 긴급성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위기에 빠진 오늘의 세계에선 디자인보다 더 긴급한 일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다. 스타르크의 발언은 ‘디자인 서울’을 떠올리게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4년간 디자인에 8조원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서울이 최초의 디자인 수도로 뽑혔다. 하지만 “서울시민은 세계 최초의 디자인 수도를 나보다 덜 기뻐하는 것 같다”는 한 외국인 참가자의 관찰처럼, 서울시민은 디자인 서울에 시큰둥하다. 왜일까? 나무 그늘 하나 없는 광화문광장, 시멘트로 덧칠한 한강 둔치 등 결과물에 대한 실망도 실망이지만, 더 큰 이유는 정책과 예산의 우선순위에 대한 착종이다. 경제위기의 여파로 살기가 더 팍팍해진 서민들로선 조성된 지 1년도 안 된 화단을 다시 옮기고 잘 가꾼 공원을 파헤치는 일에 혈세가 새나가는 일을 보는 게 괴롭다. 게다가 저소득층 복지예산은 대폭 삭감됐다. 저소득층 에너지보조금은 전액 삭감됐고, 긴급복지지원사업도 80%나 줄었다. 누구를 위한 디자인 서울이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오 시장은 “디자인은 서울의 미래이며 경쟁력”이라며 정책 지속에 강한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그의 눈에는 서민이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권태선 논설위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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