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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착한 자본주의’ 3.0 버전 매뉴얼 / 최우성

등록 2010-06-13 18:40

최우성 산업팀장
최우성 산업팀장
‘착한 경제’, ‘착한 기업’, ‘착한 자본주의’. 언젠가부터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단어 가운데 하나다. 2007~2008년에 불거졌던 세계적 금융위기 이후, 고삐 풀린 탐욕과 냉혹한 이윤 극대화 논리가 우리 삶에 끼친 폐해를 뼈저리게 체험한 게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시쳇말로, ‘착한 자본주의’는 새 시대를 이끌고 갈 대안일까?

일련의 흐름들은 아마도 ‘시장(경제)의 디레버리징’과 ‘가치(도덕)의 레버리징’이라는 짝패로 이해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한편을 시장의 디레버리징이라 부르는 건, 그간 금융시장이 주도하던 자본주의 운영방식에 작으나마 변화가 움트고 있기 때문이다. 눈 깜짝할 새 국경을 넘나들던 금융시장의 뭉칫돈은 실물 영역을 메마르게 한 채 자산시장의 거품만을 키워왔고, 이번 위기는 이런 무한도전식 레버리징(부풀리기)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 자리엔, 경제 영역 곳곳에 가치의 싹을 키워내려는 용틀임(레버리징)이 자라나고 있다.

문제는 시장과 가치 사이의 무게 추를 옮겨싣는 흐름들, 한마디로 ‘착한 자본주의’가 결코 21세기 들어 처음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 아니며, 분명 역사와 족보를 지닌 것이라는 데 있다. 1.0 버전이 등장한 때는 대략 1920년 무렵으로, 선발 산업국가와 후발 산업국가 사이의 갈등이 급기야 참혹한 전쟁으로 폭발한 직후였다. 이후 자본주의 황금기였던 1960~70년대가 막을 내릴 즈음엔, 이른바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에 주목하는 2.0 버전이 또 한 차례 고개를 내밀었다.

그럼에도 두 버전이 과연 그 이름에 걸맞은 ‘착한’ 성과를 냈는지에 대해선 찬찬히 꼽씹어볼 필요가 있다. 급속도로 전통사회를 해체시키던 문명(자본주의)에 맞서 문화(가치)를 수호해야 한다던 1.0 버전이 각국의 보수혁명과 맞물려 결국엔 파시즘의 토양을 키워준 사실이나,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그 뿌리라 할 수 있는 프로테스탄트적 윤리를 망각하고 말았다는 2.0 버전이 되레 시장만능주의로 이어진 신보수주의 혁명 앞에 길을 훤히 터주었다는 사실에 눈감을 수 없는 탓이다. 이런 뼈아픈 경험은 자본주의 경제라는 시스템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면 어김없이 가치와 도덕이라는 화두가 소방수로 등장했지만, 정작 시스템 자체를 근본적으로 수술하는 데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우리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착한 자본주의 3.0 버전 앞엔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답은 ‘열린 가능성’이다. 기업위기에서 비롯돼 가계위기로, 이제 재정위기로 이어지는 위기의 진화 과정은 결국 삶의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바꾸지 않는 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정보사회마저 훌쩍 넘어선 세상은 창조성과 가치 등 비물질적 자본을 핵심 성장동력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다만, 버전 3.0이 마침내 ‘최종판’이 되려면 과거의 ‘실패’ 경험에서 분명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착하다’라는 가치가 단지 난장판 세상이 잠시 어지러워졌을 때 으레 얼굴을 내미는 일시적인 미봉책에 그치지 않으려면, 경제주체의 의식은 물론이려니와, 기업경영, 시장질서, 정책방향, 국제질서에 이르기까지, 한마디로 시스템 자체에 골고루 스며들어야 한다. 분명 힘겹더라도 반드시 통과해야 할 시험대다. 만일 그 시험대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유행처럼 번지는 착한 자본주의 담론들도 일종의 ‘가치 인플레이션’에 그치고 말 것이다. 돈이건 가치이건 간에 현실 자체를 바꾸지 못하는 한, 그저 거품일 뿐이다.

최우성 산업팀장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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