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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아시아의 한국전쟁 / 정문태

등록 2010-06-22 22:08

정문태 국제분쟁전문기자·아시아네트워크 편집장
정문태 국제분쟁전문기자·아시아네트워크 편집장
모레면 한국전쟁이 터진 지 60년째다. 해마다 이즈음 신문과 방송들이 온갖 특집을 들이댔지만 올해는 유독 철 지난 영웅담들이 애국의 이름으로 되살아났고 전쟁광들의 호전적인 시론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튀어나오는 모양새다. 이런 마당에 아시아 각국의 친구들이 달포 전부터 천안함을 놓고 남북 사이에 험악한 말들이 오가자 전쟁 가능성을 캐물어 오는 통에 안팎으로 정신 시끄럽기 짝이 없다.

어쨌든 때가 때인 만큼 아시아의 한국전쟁을 화두로 잡아보자. 먼저, 57년째 휴전상태인 한국전쟁은 부끄럽게도 아시아 현대사에서 가장 긴 휴전 기록을 세워나가고 있다는 사실부터 밝히자. 참고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뒤부터 쿠릴열도 4개 섬을 놓고 65년째 승강이를 벌여온 러시아와 일본은 국제법상 여전히 교전상태라 휴전 기록과는 비교 거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덧붙인다.

결론을 먼저 올리자면, 아시아 현대사에서 한국전쟁은 지난 60년 동안 공백으로 남아 있다. 아시아의 시각과 관점으로 한국전쟁을 다뤄본 적이 없었다는 뜻이다. 전통주의적 해석이건 수정주의적 해석이건 모조리 냉전을 축 삼아 미국, 러시아, 중국 관계로만 한국전쟁을 읽으면서 아시아를 잃어버리는 치명적 결함을 낳고 말았던 탓이다. 한국전쟁이 아시아에 끼친 영향이니, 한국전쟁에 개입한 아시아 각국의 정치적 입장과 역할 같은 기본적인 사실들마저 실종되었다. 이러니 미국이 중국의 인민해방군 군사력을 분산시키고자 중앙정보국과 장제스의 국민당 잔당을 앞세워 중국-버마-라오스 국경에서 펼쳤던 한국전쟁 제2전선이나 7함대를 앞세워 중국-대만 연안에서 펼쳤던 또다른 한국전쟁 제2전선 같은 중대한 사실들이 비밀에 묻혀버린 건 오히려 당연해 보일 뿐이다.

아시아의 한국전쟁은 우리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 사람들도 모르긴 마찬가지다. 전투병을 파견해 한국을 도왔던 타이 사람들은 말끝마다 자랑만 늘어놓을 뿐, 자신들이 미국에 충성심을 확인시킨 대가로 동남아시아의 중심으로 인정받은 ‘서약전쟁’이었던 사실을 모른다. 또 전투병 파견 대가로 경제원조를 얻어낸 ‘생존전쟁’이었던 사실을 필리핀 사람들이 모르듯이, 터키 사람들은 갈망했던 유럽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회원권 전쟁’이었던 사실을 모른다. 마찬가지로 일본 사람들은 후방지원기지 노릇을 한 대가로 경제성장 동력을 얻은 ‘선물전쟁’이었던 사실을, 인도 사람들은 의료단 파견으로 제3세계 비동맹노선 맹주 자리를 얻은 ‘기회전쟁’이었던 사실을 모른다.

눈여겨보면, 60년 전 이들 아시아 각국 사회가 한국전쟁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들이 지금도 여전히 각 사회를 규정할 만큼 중대한 축으로 작동하고 있음이 잘 드러난다. 서로가 몰랐던 아시아의 한국전쟁은 그렇게 아시아 사회를 깊숙이 관통해 왔다.

한국전쟁 60년이 지났다. 늦어도 한참 늦은 감이 들지만, 이제라도 미국, 중국, 러시아에 사로잡혔던 한국전쟁을 아시아로 데리고 나와 서로 이해의 지평을 넓히며 아시아 역사의 한 부분으로 편입시킬 때가 됐다. 마땅히 그 첫걸음은 한국전쟁이 이어온 휴전 기록을 이쯤에서 멈추고 온전한 종전협정으로 바꾸는 일이다. 종전 없는 한국전쟁, 아직도 진행형인 한국전쟁은 역사가 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시아 현대사를 피로 물들인 한국전쟁을 아시아 평화를 위한 제물로 바칠 각오를 할 때쯤 비로소 남도 북도 ‘호전적인 한국인’ 인상을 벗고 아시아 사회의 일원으로 대접받게 될 것이다. 이게 남과 북이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지금은 천안함 사건 유엔 상정으로 치고받거나, 세상 다 얻은 양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같은 걸 떠들어댈 때가 아니다. 그런 걸 감동으로 여기는 아시아 시민은 없다. 멈춰 있는 한국전쟁을 끝내는 일이 무엇보다 급하다. 휴전은 전쟁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결코 평화를 뜻하지 않는다.


정문태 국제분쟁전문기자·아시아네트워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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