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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박근혜 대 이정희의 시대 / 안병진

등록 2010-07-22 20:51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왜 우리는 이 두 정치인의 실험에 주목해야 하는가? 이제 여성 정치인들이 남성주의 정치의 패권적이고 건조한 정치문화를 극복해야 한다는 취지로만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과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에 당신이 주목한다면 이는 시대의 거대한 변화 추세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그제 6월 민주포럼(대표 윤준하)이 주최한 이정희 대표와의 간담회에 패널로 참석하고 돌아오면서 불현듯 떠오른 단상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는 무조건적 ‘성과주의의 시대’에서 ‘진정성의 정치’(politics of authenticity)의 시대로 이동하였다. 전자는 과정이나 장기적 결과나 윤리는 제쳐두고 일단 무언가 실행이라도 하자는 시대정신으로 이명박과 부시 후보 당선의 일등공신이다. 후자는 국가나 서민을 위한 진심 어린 마음을 발견하고 공감하고 싶어 하는 시대정신으로 노무현과 오바마 후보 당선의 일등공신이다. 이명박 정부의 ‘맹활약’(!) 덕분에 단 몇 년 만에 다시 시대 사이클은 후자로 돌아왔다. 박근혜는 진정성 정치의 보수적 버전이고 이정희는 진보적 버전이다. 전자는 구체적 사익이나 정치계산보다 추상적인 국가나 민족을 위한 혼과 진정성을 강조한다. 후자는 추상적 이념이나 정파보다 구체적인 서민과 약자, 그리고 그들 가족들을 위한 진심의 정치를 강조한다. 이 두 정치인이 이후 대선에서 대결할지는 알 길이 없지만 최소한 2012년 대선이 진정성 정치의 보수 대 진보의 대결임은 분명하다.

‘진정성의 정치’는 당연하게도 가슴을 파고드는 시적 언어로 표현된다. 지금 현재 한국 정치에서 가장 흥미로운 언어의 마술사는 단연코 박근혜와 이정희이다. 마치 하이쿠(일본 시문학 특유의 짧은 시)를 보는 것 같은 박근혜 의원의 언어는 정치커뮤니케이션 학문의 연구 대상이다. 그제 포럼 모두발언과 뒤풀이에서 이정희 대표는 정치인 특유의 사교성도 화려한 입담도 없었지만 인기 대폭발이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언어에서는 여의도 특유의 칙칙함과 정치계산의 냄새 대신 김제동과 박수홍의 느낌이 뚝뚝 묻어나기 때문이다. 난 정치인 트위터는 별로 흥미가 없지만 두 사람은 ‘팔로잉’ 해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일어난다. 진정성의 정치답게 두 사람에게는 초당적 정치의 기풍이 존재한다. 박근혜 의원은 세종시 이슈를 통해 당을 넘어 초당적 약속에 헌신하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에 성공했다. 이정희 대표는 그간 의정활동과 최근 야권연대를 통해 민주노동당도 농성과 자기주장만 하는 당이 아니라 단 한 보의 진전을 위해서도 초당적 협력과 희생을 할 줄 아는 당임을 생생히 보여줬다.

하지만 두 의원 앞에는 험난한 장벽이 놓여 있다. 개인 박근혜와 당의 브랜드 사이에는 큰 격차가 존재한다. 박근혜의 좌선회는 당심의 반발의 대상이다. 개인 이정희와 당의 브랜드 사이에는 더 큰 격차가 존재한다. 개인 이정희의 유연한 진보관은 당심과 온도가 다르다. 난 그제 뒤풀이 자리에서 팬클럽에 가입하겠다고 그만 약속을 해버렸지만 나의 고정관념 속에 있는 칙칙하고 거친 이미지의 민주노동당엔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다. 과연 그녀가 협소한 당 활동가의 장벽을 넘어 대중의 바다 속에서 ‘시민정치’의 대담한 실험을 할지 아직은 의문이 든다.

미국 학계 일각에서는 ‘진정성의 정치’가 때로는 ‘진정성이 있는 척’ 하는 이미지 정치로 귀결되는 위험을 자주 지적한다. 앞으로 박근혜 의원은 자신의 복지 화두의 구체적 실행 프로그램을 제시하여 보수와 진보의 가치 논쟁을 생산적으로 전개할 책임이 있다. 이정희 대표는 어제 포럼에서 향후 건강보험 이슈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표현했다. 앞으로 두 의원은 건강보험과 교육, 남북관계, 기후변화 같은 이슈에서 한국 사회의 가치 대논쟁과 실행 프로그램 경쟁을 주도했으면 한다. 향후 한국 정치의 2년은 일상적 정치의 시기와 달리 무척 흥미롭고 역동적인 시기가 될 것이다. 박근혜와 이정희. 이 두 단어는 앞으로 2년의 한국 정치의 변화를 읽어내는 키워드이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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