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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주 칼럼] 미혼모를 학교에서

등록 2010-07-25 20:28수정 2018-05-11 15:08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 언론인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당선자 시절 인수위 위원장이었던 박재동 화백은 교육문제 전문가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아침에 눈만 뜨면 학교에 가고 싶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연구하고 또 실험도 했다.

고교에서 미술시간 내내 학생들이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게도 했고 먼지 풀풀 나는 운동장에 커다란 주전자를 들고 나가 주전자 물꼭지를 붓 삼아 운동장에 그림을 그리게 했던 교사였다. 집단창작으로 집도 짓게 했고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학생들의 교복을 맞추어 입고 출근하기도 했다. 학교의 역할이란 학생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학교에서 수용해서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그의 중요한 교육철학 가운데 하나는 미혼모가 된 학생들을 학교가 거두자는 것이다. 미혼모를 학교가 포기하면 그 아이의 장래와 뱃속에 있는 아이가 모두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나아가 미혼모의 아이까지도 학교가 지역사회와 힘을 합쳐서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않게 데리고 함께 등교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수위 위원장을 하면서 교육공무원들 앞에서 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역설했다고 한다.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이 실현될 수 있다고 보느냐고 물었더니 왜 왜 못합니까, 생각을 바꾸면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고 학교나 학생, 지역사회 또 국가적으로 모두가 윈윈게임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열변을 토했다. 다른 나라도 다 하는 일을 왜 우리나라는 못하느냐는 것이다.

여섯 살 어린이가 유치원에서 상습적으로 원장에게 성추행당한 사건이 있었다. 부모가 고발을 하는 데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학부모들이 자기 아이도 성추행당한 것으로 알게 된다고 쉬쉬하라고 말렸고 성추행을 당한 ‘지저분한’ 아이와 한 유치원에 다닐 수 없다고 자퇴시킨 학부모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정책적으로 미혼모와 그 아이들을 학교가 받아들이는 방법을 찾는다 해도 학부모들이 그것을 용납할까 싶다. 청소년들이 학교 안에서 서로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대신 상대를 제치고 우뚝 서야만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다는 교육철학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현실에선 그런 제도의 도입이 가능할지 계속 의심스러웠다.

지난해에 발표된 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미혼모의 증가 속도와 성경험의 나이가 어려지는 것을 토대로 유추해 보았을 때 현재 18살 미만의 미성년자 약 2만6천명이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한다. 10대 미혼모의 증가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고 세계적인 현상이다. 나라마다 이들을 학교 안에서 보듬는 방안이 시행되고 있다. 미혼모도 미혼모의 아이도 국민이고 교육받을 권리가 있는 소중한 ‘교육인적자원’이다. 따라서 이들도 학교교육의 시스팀 아래 들어오도록 설득하고 도와주어야만 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이다.

‘걸’과 ‘소녀’와 ‘섹시’가 합쳐진 상품이 무더기로 팔리는 세상이다. 그 ‘걸’들과 ‘소녀’들이 한편으론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일 수도, 우리 집 딸일 수도, 옆집 딸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현상이 몹시 아슬아슬하고 걱정스럽다. 제대로 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성교육 없이 도덕적·윤리적·종교적 잣대로 순결교육을 시키면서 한편으론 ‘걸’과 ‘소녀’와 ‘섹시’를 무한정 동경하고 감탄하며 소비하고 있는 현상이 곤혹스럽다.

교육의 목표와 학교의 존재 이유가 일부 학생들의 성공을 위한 발판으로 쓰이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서는 안 된다. 온 국민의 수준을 높이고 골고루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교육목표가 수정되지 않는 한 앞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는 10대 미혼모를 학교가 거둔다는 발상은 발붙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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