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구-서해성의 직설
“여기 사람 있어요!” 전과 11범 인권운동가 박래군의 외침
[한홍구-서해성의 직설]
제12화 한국인권 현주소를 말한다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박래군은 모꼬지를 다녀오는 동안 차가 밀리는 걸 내내 걱정했다. 한미은행 점거농성으로 첫 번째, 평택미군기지이전반대투쟁으로 두 번 연속, 용산참사사건으로 이종회 공동집행위원장과 구속되어 옥에 갇혀 있다 나온 그는 수갑을 들고 온 순경도, 간수도 벌써 다 잊은 듯 당장 막히는 휴가철 교통에 안절부절못해 문자로 거듭 이동경로를 알려왔다. 셋은 시끌벅적하게 찧고 빻고 하면서 인권에 대해 말을 내질렀다. 종이때기는 역시 말의 생동감을 당할 수 없다. 박래군은 야부리에 약하다면서도 마이크를 놓을 줄 몰랐다. 허리를 자르고 덤비고 먼저 말하겠다고 나서느라 세 사람 대화에 ‘인권’은 없었다. 어쨌든 오늘은 말이 한곳으로 빠져들면 제지하곤 하던 고경태가 휴가를 가서 긴 팔이 천천히 움직이는 모양새를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서해성이 야부리와 노가리 사이에서 12번째 사회를 보면서 겨우 꼽사리를 낀다고 하자 한홍구가 퉁바리를 놨다. 고경태 휴가가고 없으니까 지 맘대로 하면서. 정리/서해성
서해성(이하 서) 오늘은 ‘일선 장병’께서 나왔습니다. 인권의 최전방을 지키다 온 분이죠. 근데 다들 너무 일찍 나왔다고들 하던데.(웃음) 박래군(이하 박) 앰네스티 사람들도 그렇게 말하더군요. 석방을 위한 활동을 해보려고 했더니 그만 나와 버렸다고. 감옥이야 얼마 안 살았지만(4개월10일) 용산 일이 터지고 나서 내내 한남동 순천향대학병원에 갇혀 지냈으니 꼬박 1년2개월이었죠. 전철 타는 것도 낯설었을 정도라고 할까.
한홍구(이하 한) 이래저래 먹물들에게 늘 죄의식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죠. 박 선생 나오자 환영 못 받았어요. “사람들이 아니, 면회도 못 갔는데 벌써 나왔어?” 그랬죠.(웃음) 서 인권활동으로 청춘을 다 보내지 않았나. 한국에서 인권운동은 자기 인권을 학대해야 가능하다고들 하는데. 인권이 아니라 맷집으로 살아온 세대
박 인권운동이 밥은 먹여 준다.(웃음) 나를 보면 알지 않나. 굳이 밝혀야 하나. 우리는 최저임금제도를 지키라고 싸우고 있는데 정작 최저임금 해당자가 못 되죠.
한 국제민주연대 일을 할 때 인권활동가들의 인권 및 복지실태 조사를 한 적이 있어요. 형편없었죠. 인권운동이 얼마나 인권운동가를 착취하는지….
박 1974년 NCC인권위원회를 시작으로…인권은 주로 정치범, 양심수, 고문 문제로 간주됐죠. 90년대에도 우리가 재소자 인권문제를 말하자 양심수가 아닌데 상담해도 괜찮냐고 물어올 정도였죠. 이 지점(자유권)을 넘어서는 게 어려웠고, 다시 사회권으로 나아가는 데 애로가 있었죠.
한 80년대에 인권은 부르주아적이라고 대접받지 않았나. 진보가 인권 얘기할 때 모든 사람의 보편적 인권을 얘기하지 못하고, 우리들 고문당한 것만 얘기했어요. 70년대 인권기도회를 뺄 수 없고, 80년대 숱한 군의문사 사건, 김근태 사건, 부천서 성고문 사건 같은 것들이 토대가 되어온 거죠.
박 인권 한다는 사람이 세계인권선언을 안 읽었다고 할 정도로 전문성도 좀 부족했어요.
서 세계인권선언 머리에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며, 인류는 서로 형제애로 대해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실제 현실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지 않고 불평등하며, 인류는 서로 상당히 적대감을 갖고 살고 있다는 걸 웅변하고 있지 않나.
박 법무부 인권과를 박정희가 만들었어요. 인권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조처였지. 인권이란 걸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은 거죠. 선언만으로는 안 되죠.
서 학교 다니면서 인권관련 교육 같은 걸 받아본 적 있나.
한 대학에서 소수자 인권을 말하면서 자신이 당한 차별이나 인권침해에 대해 써와라 했더니 절반 가까이가 침해받은 적이 없다고 했어요. 인권감수성 죽이는 교육이 이렇게 심하구나 하고 놀랐죠.
박 고등학교 때, 군대에서, 데모하면서 그토록 두들겨 맞았는데 맷집이 없었으면 죽지 않았겠나. 교육이라니!(폭소)
서 개별적 불이익이나 침해가 생기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라, 나아가 연대책임, 연좌제…거기에 인권이 성립할 수 있었겠나. 용산참사대책위원장으로 감옥에 갔다 왔는데, 전과 4범인가.
박 용산과 관련해서 확정판결이 나게 된다면 11범이죠.
한 인권운동을 그렇게 했는데도 엠비를 못 넘어섰군.(웃음)
용산은 ‘버림받은 겨울’
서 우리 사회에서 용산이란 무엇인가.
박 개인적으로 용산에서 미군기지 나가라는 운동을 하고 평택으로 내려가서 오지 말라고 했는데, 다시 용산을 지키게 됐어요. 팔자 같은 거지. 작년에는 광장에서 애도하는 일이 많았어요. 김수환, 노무현, 김대중…그런데 용산은 광장에서 애도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었지. 나는 그게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한 용산은 광주항쟁 이후 죽음의 등가성을 다시 제기했어요. 참혹하게 죽어간 사람들, 이름을 기억할 수도 부를 수도 없는.
서 용산을 정서적으로 표현하자면 ‘버림받은 겨울’이란 말이 떠올라요.
박 장례는 한두 달 안에 치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전두환 때부터 해온 게 있어서 먼저 돈으로 설득해보고, 안 되면 시신탈취로 가거나 했어야 하거든요. 엠비 정부는 고립을 시켜놓고 추모제 등 모든 합법성을 차단하고, 무릎 꿇고 오기를 기다렸어요.
서 죽음을 분산시켜서 다시 고사시키는 거죠. 그래도 종교, 문화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았나.
박 생명평화미사, 정의구현사제단, 도시빈민활동 하시는 분 등 천주교의 적극적인 참여, 불교계의 지원들이 없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죠. 문화예술인들, 미디어 활동가들도.
한 평화박물관에서 ‘망루전’을 두 번 했죠. 현장 중심으로 먼저 하고, 역사상 철거 문제나 고공투쟁 문제 등을 다뤘어요. 서 선생과 기획했죠.
서 왜 그토록 성급하게 진압을 했을까.
한 조선 500년 포도대장 중 어청수만큼 이름난 사람이 있었나. 촛불집회, 명박산성 등 혁혁한 공이 있는 셈이죠. 행정안전부 장관이 되었어야 할 그 어청수를 잘랐어요. 새로 서울치안을 맡은 자의 부담이 어떠했겠나. 사고는 피하기 어려웠던 거죠.
박 시위진압 매뉴얼 같은 거 따질 것 없이 위험물건들을 다 소진시킨 뒤에 들어가면 될 것을, 3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진압할 이유가 없었지. 신자유주의 이후 생존권 문제를 제기하는 대중을 적대시하면서 잔인하게 진압하고 있어요.
서 내게 용산은 짧은 필름 두 컷으로 남아 있어요. 먼저 남일당 옥상 불꽃 앞에서 두 손을 머리에 올려 하트 표시를 하는 사내, 그 직후에 망루가 터져 올랐는데 그걸 보고 있던 익명의 시민이 외치는 말, ‘저기 사람 있어요!’ 오늘 우리 사회 인권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소월 시 구절이거나 한대수 노래 한 대목 같지 않은가. 여기 사람 있어요.
박 엠비 출범 뒤 시국사건과 관련해서 불구속 기소를 한 뒤 벌금을 때리거나 압수수색이 뚜렷하게 증가했어요. 나조차도 압수수색을 당한 적이 없는데 촛불집회에 참가한 보통 사람을 압수수색하는 거죠. 괜히 회사 가서 그 사람을 확인하고, 촛불집회 때 자동차 몬 사람 운전면허를 취소하죠. 범죄수단이라고. 촛불집회에 나갔던 사람 중 1천 명 넘게 벌금형을 맞았죠.
한 나도 ‘닭장투어’를 나갔는데, 벌금형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하고 있어.
서 안타깝게도 불에 타 죽은 철거민 다섯이나 경찰관도 집이 없었어. 집 없는 사람들끼리 진압과 저항으로 대치하고 싸우다 죽은 거죠.
한 용역들 중 집 있는 자가 몇이나 되겠나.
박 광주대단지 사건 이후 숱한 세월 동안 집 없는 사람들을 뜯어먹어온 역사가 있지 않나. 그 과정에 싸우면서 임대주택제도 등을 얻어냈죠.
전쟁은 가장 참혹한 인권침해
서 용산이란, 미군이 살아온 상징적 땅인데, 이제 시내에 남은 알짜배기 땅은 거기뿐이고. 삼성물산, 대림, 포스코들이 행정기관을 앞세워 몰려든 거죠. 경찰과 용역은 공권력의 이름으로 거기 청소를 하러 간 것이고.
박 경찰국가 본질은 친기업, 친자본이죠.
서 철거란 게 실은 철거약탈이거든. 보상이란 이름으로 김칫국물 좀 먹이는 거고. 중세 유목민들은 털어먹고 가버리면 끝인데 문명사회에서는 약탈의 체인이 회전하는 거죠. 집과 삶이 떨려나면 날품이 되어 다시 거기로 기어들어오죠. 하급 소비자가 되고. 불평등의 평등은 이렇게 순환되고 정당화되는 거죠.
박 서양은 물론 일본만 해도 순환식 개발은 진작 도입됐고, 개발논의를 하는 데 20~30년씩 걸려요.
서 사람이 모여서 30년이 넘게 살면 그 자체가 문화고 공간은 문화재인 거죠. 인권운동도 30여년 되어 가는데, 몇 해 전부터 북한인권을 말하지 않는다고들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박 인권운동사랑방에 북한인권담당이 있어요. 그런데 이 문제는 너무 정치화되어 있어서 도리어 인권으로 접근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어요.
서 북한인권 말하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은 게 있죠. 70~80년대나 광주학살 때는 왜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었나. 박정희 정권 말기, 카터의 인권외교가 생각나요. 걸핏하면 미국이 팔아먹는 민주와 인권은 어떤가. 이라크, 아프간이라고 다르지 않을 텐데.
한 인권에는 자유권, 사회권, 생명권 등 다양한데, 과거 우리 내부의 고통에 대해서 침묵한 자들이 북의 자유권만을 말하고 있죠. 그들은 인권에 목적이 있다기보다 철저히 도구화된 인권관을 가지고 있죠. 부시가 인권 바로잡는다는 명목으로 두 나라에 쳐들어가 수십만을 살상하지 않았나. 전쟁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인권침해죠.
박 수단과 과정, 결과가 다 인권적이어야만 하죠.
서 생존권 자체가 위협받고 박탈당하는 사람들에게 쌀을 보내지 말라는 것이 반인권적 발상 아닌가. 자유권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죠. 인권 측면에서 과거사 문제는 어떤가.
한 과거사 문제를 총체적으로 정리하자면 피해자들에게 도리어 상처 주는 일이 더 많지 않았나 싶어요. 4·3 빨갱이들을 죽인 게 왜 죄냐, 지렁이가 왜 꿈틀거리느냐, 덜 밟아서 그렇다, 이근안이 목사님 되어 간증하고 다니고. 과거사 정리에 성과가 있었지만 그토록 인권침해를 한 사람이 많은데도 단 하나 감옥에 보내지 못했으니.
박 최근에도 나치 관련자를 잡는 걸 봤어요. 반인륜적 범죄에 공소시효가 없어야지!
한 하물며 우리는 피해에 대한 소멸시효까지 있어. 보도연맹사건 같은 경우는 기가 막힌 일 아닌가. 어디에 하소연하나.
서 이럴 때 국가란 개인에게 무엇인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죠. 다행스럽게 근래에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같은 게 나오고 있는데.
박 여성·노인·이주민들에 대한 인권조례를 만든 지자체들이 있어요. 학교 안에서 집회 시위 허용을 포함하는 학생인권조례에 교사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한데…여론조사를 한다면.
한 한국대표 인권활동가가 인권문제를 여론조사로 정한다는 말을 하면 되나.(웃음)
헌법보다 센 교칙
박 지자체에 인권기본조례를 만들 필요가 있어요. 학생인권조례의 경우 감독문제도 중요하고, 학생들 참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해요. 교칙은 그대로인 채 해결될 수 있는 게 얼마나 있겠나. 그걸 넘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는 뜻이죠.
한 교칙이 헌법보다 센데, 70년대에는 국기에 경례를 안 해서 퇴학당한 학생이 재판에서 진 적이 있어요. 조례를 만들고 안 지키면 처벌조항도 있어야 하죠.
서 시각장애인들이 한강물에 숱하게 뛰어들어 결국 시각장애인만 안마사가 될 수 있다는 게 합헌이라고 나왔어요. 소수자 인권이 선언에 그치면 정상적 노동보상에서 벗어나게 되어 하층에서 벗어날 길이 없게 되죠.
박 조례는 구체적이고 실생활에 연관될 수밖에 없죠.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지자체가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가 중요하죠.
서 그 상위기관이랄까. 현재 국가인권위는 인권과는 거리가 먼 권력에 면죄부를 주고 있는 건 아닌지.
박 대통령 직속기구화하겠다는 걸 인권운동가들이 저항으로 무산시켰지만 기술적으로는 대통령 의사를 관철시키고 있죠. 현병철 위원장을 뽑은 것부터. 연성의 문제들만 다루고…국가권력 감시 등은 포기한 거죠.
서 오늘날 인권 범주는 다양해지고 있어요. 생태주의나 자연권까지로 확장되거나 침해되고 있는데.
박 가령 물을 찾아야 하는 문제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죠. 이런 게 인권일 수 없었는데 생명유지를 위한 긴요한 상황이 오면 인권이 되는 것이고.
서 해, 바람, 물은 인권일 수 없죠. 이게 시장화될 때 여기에 대응하는 것으로써 인권이 되는 것이죠. 부족함을 갈취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죠. 환경적 사고란 내 주변에만 쓰레기가 없으면 된다는 식의 사고일 수 있어요. 태평양이나 가난한 나라에 쓰레기를 내다버릴 수 있는 게 그것이죠. 가장 큰 피해자는 오염된 곳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이죠. 반공해운동은 실은 계급운동인 거죠.
한 세상은 굳이 둘로 나눠야 한다면 인본주의와 자본주의로 나눌 수 있어요.(박수) 인권을 배운 사람이 정치를 하는 게 아주 중요해요. 상대에 대한 존중, 부끄러움을 알아야 하죠. 인권을 글로 배우는 건 위험해요. 삶과 몸으로 배워야죠.
서 며칠 전 4대강 반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낙동강 보에서 물을 전달받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홍대앞 철거민들이 모여 있는 두리반에 전기도 끊고. 노태우 정권 이후 없어진 줄 알았더니 이런 일이 부활하네요.
박 선악의 판단을 떠나 물, 전기 같은 것을 끊는 건 생명권 침해죠. 자칫 이런 것들이 종합해서 G20 회의에서 나타날까 두려워요. 이미 노숙인, 이주민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으니. 배제와 공포와 자기 검열을 일상화하고, 군대까지 동원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어요. 경찰국가를 완성해 가는 거죠.
한 그동안 발전해온 인권이 뒤로 후퇴하고 있어, 지금. 보편적 가치는 좌우를 넘는 것인데 말이죠. 손님이 온다고 해서 협조를 넘어 기본권을 침해받아야 한다는 건 황당한 일이죠.
배고픈 인권을 넘기 위하여
서 인권의 기초가 전면 부정되고 있는 거죠. 이 모든 걸 한마디로 줄이면, ‘여기 사람 있어요!’가 되는 거죠. 말이란 게 역사 속에서 태어나야 위대해지는 법이죠. 인권을 향한 이보다 간절한 외침을 쉬 들어보지 못했어요. 이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권력은 폭력일 뿐이죠.
박 사람들은 자기가 당할 때만 인권을 찾죠. 보통 때는 무심하지만 어느새 반인권적 상황이 자기를 옥죄어오게 되죠. 평소에 이걸 일깨워주는 게 인권활동가들이죠.
한 어떤 의사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어요. 세상에 박수값을 내라, 하룻저녁 극장에서 R석 10만원을 내지 않나. 적어도 인권단체가 자기 재생산을 할 수 있는 지원은 있어야 하는 거죠.
서 인권이 배가 고픈 이 세상을 넘어서려면, 먼저 인권에게 밥을 먹여야겠군요.
후원계좌: 신한은행 501 01 191837 재단법인 인권재단 사람
제12화 한국인권 현주소를 말한다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박래군은 모꼬지를 다녀오는 동안 차가 밀리는 걸 내내 걱정했다. 한미은행 점거농성으로 첫 번째, 평택미군기지이전반대투쟁으로 두 번 연속, 용산참사사건으로 이종회 공동집행위원장과 구속되어 옥에 갇혀 있다 나온 그는 수갑을 들고 온 순경도, 간수도 벌써 다 잊은 듯 당장 막히는 휴가철 교통에 안절부절못해 문자로 거듭 이동경로를 알려왔다. 셋은 시끌벅적하게 찧고 빻고 하면서 인권에 대해 말을 내질렀다. 종이때기는 역시 말의 생동감을 당할 수 없다. 박래군은 야부리에 약하다면서도 마이크를 놓을 줄 몰랐다. 허리를 자르고 덤비고 먼저 말하겠다고 나서느라 세 사람 대화에 ‘인권’은 없었다. 어쨌든 오늘은 말이 한곳으로 빠져들면 제지하곤 하던 고경태가 휴가를 가서 긴 팔이 천천히 움직이는 모양새를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서해성이 야부리와 노가리 사이에서 12번째 사회를 보면서 겨우 꼽사리를 낀다고 하자 한홍구가 퉁바리를 놨다. 고경태 휴가가고 없으니까 지 맘대로 하면서. 정리/서해성
서해성(이하 서) 오늘은 ‘일선 장병’께서 나왔습니다. 인권의 최전방을 지키다 온 분이죠. 근데 다들 너무 일찍 나왔다고들 하던데.(웃음) 박래군(이하 박) 앰네스티 사람들도 그렇게 말하더군요. 석방을 위한 활동을 해보려고 했더니 그만 나와 버렸다고. 감옥이야 얼마 안 살았지만(4개월10일) 용산 일이 터지고 나서 내내 한남동 순천향대학병원에 갇혀 지냈으니 꼬박 1년2개월이었죠. 전철 타는 것도 낯설었을 정도라고 할까.
한홍구(이하 한) 이래저래 먹물들에게 늘 죄의식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죠. 박 선생 나오자 환영 못 받았어요. “사람들이 아니, 면회도 못 갔는데 벌써 나왔어?” 그랬죠.(웃음) 서 인권활동으로 청춘을 다 보내지 않았나. 한국에서 인권운동은 자기 인권을 학대해야 가능하다고들 하는데. 인권이 아니라 맷집으로 살아온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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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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