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성 산업팀장
원자재값은 18%나 껑충 뛰었는데 납품단가를 고작 1.8% 올려주더라…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 경영자와 임직원의 분노 섞인 하소연이 이어진다. 상생! 같이 살자고.
이분들께 정말 죄송스런 소리일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상생, 그건 정답이 아니라고 본다. 상생을 위해 힘쓰겠다는 정부나 대기업들의 진정성을 의심해서가 아니다. 너도나도 상생을 외치는 이즈음, 뜬금없이 상생이 정답이 아니라고 보는 이유는 따로 있다. 정부와 대기업의 ‘선의’와는 무관하게, 역설적이게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이 더욱 힘들어지도록 경제환경이 빠르게 바뀌고 있는 까닭이다. 이런 마당에 맹목적으로 상생이라는 단어만을 외치는 건 오히려 문제의 정곡을 피해가기 십상이다.
적어도 국내 대표기업들이 맞닥뜨린 경제환경은 예전과는 판이하다. 국내 대표기업들 가운데 상당수는 세계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글로벌 챔피언 자리에 오른 지 오래다. 속된 말로 ‘노는 물’ 자체가 변했다. 삼성전자 주식의 절반은 외국인이 쥐고 있고, 현대자동차의 국외생산량은 국내생산량을 웃돈다. 냉정하게 말해, 국내 중소기업과 상생할 공간은 그만큼 줄어들기 마련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눈높이도 예전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벌어졌다.
이런 마당에 정부나 대기업이 상생이랍시고 기껏해야 ‘제값 쳐주기’, 말 그대로 ‘공정거래 확립’ 차원에 매달리는 건 번지수를 한참이나 잘못 찾은 것이다. 그런 일일랑 공정거래위원회의 해당 부서 하나만 제 맡은 소임을 다하면 된다. 느닷없는 정부의 압박에 놀라 중소기업과 사이좋게 지내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애쓰는 대기업들은 물론이려니와, 대통령을 포함해 국사에 바쁜 청와대 참모진이나 장관들이 총출동해 앵무새처럼 상생만을 떠드는 건 볼썽사납다. 더군다나 이들이야말로 출총제 폐지 등 대기업에는 막강한 힘을 실어주면서도 정작 사후규율을 마련하는 시늉만 해댔던 엠비(MB)정부 인수위의 핵심인사들 아니었던가.
진정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성공하는 길을 찾겠다면, 정부와 대기업이 할 일은 따로 있다. 우선 투자와 고용계획의 수립과 집행 단위를 개별 대기업 차원을 넘어 업종 자체로 확대해야 한다. 대기업과 하청 중소기업을 하나의 ‘통합된 경제단위’로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무조건 삼성전자에 투자와 고용을 늘리라고 다그치는 대신, 처음부터 삼성전자를 비롯해 1, 2, 3차 협력업체 모두를 아우르는 투자와 고용계획을 짜도록 사회적 합의기구를 만들어내야 한다.
앞선 얘기가 일종의 ‘입구전략’이라면, 반대편 끝의 ‘출구전략’도 중요하다. 오늘날 상품은 대부분 계열화된 조립과정의 산물임에도 그 결실은 최종 조립자(원청자=대기업)만 고스란히 독차지하고 있다. 해당 업종 자체를 업그레이드한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예를 들어 최종 조립자가 예상 기대치 이상의 수익률을 거둘 경우, ‘초과이윤기금’이나 ‘사회연대기금’ 같은 걸 만들어 해당 업종의 모든 관련기업에 그 과실이 돌아가도록 새 틀을 짜야 한다.
상생의 진정한 의미는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구조를 벗어나는 데 있다. 기껏해야 제값 쳐주기 정도의 상생은 바람직하지도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지금 우리 중소기업에 필요한 건 ‘착한’ 대기업의 우산 아래 그럭저럭 살아가도록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대기업과 협력하되, 동시에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따로 또 같이’ 전략의 토양을 북돋는 일이다. 낯익은 상식을 뒤집는 특단의 카드가 마련되지 않는 한, 지칠 대로 지친 중소기업이 저만치 앞서나가는 대기업과 ‘상생’하기에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최우성 산업팀장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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