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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백승종의 역설] 공정한 사회

등록 2010-08-20 21:29

백승종 역사학자
백승종 역사학자
지금 서울에서는 어느 미국 교수의 공개강연에 참석하려고 만명도 넘는 시민들이 야단법석이다. 강연 주제는 정의다. 진부한 주제인데도 호응이 각별하다면, 정의에 굶주린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는 현상이 아닌가.

고대사회에서는 신이 곧 정의였으며, 인간의 사명은 신의 뜻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있었다. 따라서 정의란 신적 질서의 표현인 동시에 개인적 윤리였다. 이런 믿음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17세기였다. 토머스 홉스 등은 분쟁 해결을 목적으로 체결된 사회계약을 정의로 이해했다. 자연히 정의는 사회적, 제도적 윤리로 탈바꿈했고, 법철학, 사회철학 및 정치학의 중심 테마로 부상했다. 정의의 영역이 경제, 사회 및 문화로 확산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사회정의”가 학술용어로 뿌리내린 것은 1845년, 예수회 신학자 루이기 타포렐리를 통해서다. 그는 제 몫을 그대로 돌려주는 것이 정의라고 말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정의 개념을 바탕으로 정의로운 사회의 실현을 부르짖었다. 당시 유럽은 산업화가 한창이었다. 자본가와 공장노동자라는 새로운 계층이 등장했고, 뒤이어 노동력 착취와 도시빈민의 발생이 사회문제로 대두했다. 미국의 존 롤스와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 프랑스의 장자크 루소 등은 이 문제를 깊이 성찰했다. 최근에는 세계화, 기후변화, 노령화 및 생태적 사고의 진전으로 국가 간, 세대 간의 정의와 생태 차원의 정의가 논의되고 있다.

며칠 전 이명박 대통령은 기회균등과 상생의 토대 위에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나름대로 사회정의를 실천하겠다는 것인데, 인식의 범주가 협소하고 피상적이다. 이른바 4대강 사업 같은 것은 생태계 정의를 완전히 외면하고, 6·2 지방선거에 표출된 민심을 배반한데다, 강변의 땅임자들만 배불린다는 비난이 거세다. 하기는 <피디수첩> 같은 것도 자율성이 보장되지 못하는 오늘이 아닌가. 표리부동한 이것이 공정한 사회라면 너무 가혹하다.

백승종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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