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서 언어 대중, 크게는 인간 사회의 집단의식 같은 것이 발견될 때가 있다. 이때의 집단의식은 집단무의식이라고 해도 별 관계가 없다. 어쩌면 경계쯤에 있는 의식이 아닐까 싶다. 훈훈한 인간의 정이 느껴지는 소식을 전할 때 곧잘 쓰는 ‘세상은 아직’이라는 말에서 ‘아직’이라는 부사는 훈훈한 느낌을 싹 가시게 하는 말이다. 오싹한 느낌을 주는 말이지만 관용적으로 쓰이면서 그렇고 그런 말로 받아들여진다. 자기도 별로 넉넉지 못한 처지에 남몰래 어려운 이웃을 도와온 한 소시민의 선행 사실을 전할 때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곳이다”라는 말이 섞이는 것은 낯설지 않다.
“세상에는 아직 온정이 남아 있다.” 중앙 일간지에 실린 에세이의 한 구절이다.
세상은 살 만한 곳이고 세상에 온정이 남아 있다면 인간 사회는 희망적이다. 그런데 왜 ‘아직’일까?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곳이고 세상에는 아직 온정이 남아 있지만, 언젠가는 살 만한 곳이 못 되게 되고 언젠가는 온정이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의식이 ‘아직’이라는 부사에 실려 있다. 학문이나 기술의 발전과는 관계없이 인간성이라는 것은 말라가고 있고, 그래서 세상은 언젠가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릴 것이라는 의식이 말 속에 스며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이런 말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두 이런 의식에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재욱/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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