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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종석 칼럼] 김정은과 북한의 진로

등록 2010-10-18 20:00

이종석
이종석
북한의 3대 세습이 공식화되었다. 북한이 수령 중심의 1인 절대권력 체제를 속성으로 하고 ‘가족의 확대된 이미지로서 국가’를 지향해왔다는 점에서 혈연으로 이어지는 권력 세습은 일찍이 예견되었다. 따라서 북한의 세습을 새삼 충격적으로 여길 일은 아니지만, 그 비민주성과 비효율성을 생각하면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규범적·도덕적인 차원에서 북한의 세습이 문제가 된다고 해서 우리가 온전히 그것을 잣대로 대북정책을 구사할 수도 없다. 이번 세습으로 공식화된 ‘김정일 수령-김정은 후계자’ 체제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안보 불안의 요체인 북한 핵문제의 주체이며 불안정한 남북관계의 한 축을 관리하는 실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중대한 안보 현안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이 세습정권의 실체를 인정하고 대화를 모색할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북한의 개혁개방을 위해서도 통치주체인 이 세습정권과의 대화는 불가피하다. 수령 중심의 일원적 국가인 북한에서 후계체제의 실패는 극심한 체제 불안정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역설적이지만 이 시대착오적인 세습이 일단 성공하는 것이 한반도 정세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만큼 북한의 세습이 지닌 도덕적 문제와 별개로 국익 관점에서의 현실적 대응은 냉철하고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김정은은 김정일에 비해 매우 취약한 상황에서 후계자가 되었다. 김정일은 1964년 6월 조선노동당에서 첫 사업을 시작한 이래 당내 숙청과 김일성 개인숭배 작업을 주도하면서 10년 만에 후계자로 공식화되었지만, 김정은에게는 이렇다 할 당 생활 경력도 없다. 김정일은 국가가 주민들의 하루 세끼 끼니를 해결해주고 사회주의 진영과 중·소라는 든든한 동맹이 있던 시절에 후계자의 길을 걸었지만, 김정은은 내부 자원이 고갈되어 기아가 일반적 현상이 되고 대외적으로 고립이 심화된 위기상황에서 이 자리에 올랐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의 권력 공고화에 결정적인 구실을 할 수령 김정일의 건강이 염려되고 있다. 그래서 당 비서와 정치국 위원을 맡으면서 후계자가 된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은 국가 위기 상황을 반영한 듯 당 중앙군사위원의 자리를 통해서 후계자에 올랐다.

과연 김정은 후계체제 아래서 북한은 어떤 길을 걸을까?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지만 대외적 긴장이 내부의 후계체제 공고화 과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대한 차단하고 후계자의 외교적 지도력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유화적인 외교노선을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통적인 대중관계의 강화와 대미관계 및 남북관계의 개선 등을 모색하고 북핵문제에도 적극성을 띨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대외적 도발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본다. 북한 지도부는 이미 2차 핵실험을 통해 김정은이 ‘강력한 결단력’을 지닌 인물이라는 식의 대내적 선전효과를 거두었다. 북한은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는’ 김정일-김정은의 지도력을 과시하고 자신의 핵협상 지렛대를 높이려는 속셈에서 작년 봄에 무모해 보이기조차 한 로켓발사와 2차 핵실험을 감행한 바 있다. 이제는 그런 모험적 ‘지도력’보다는 자신에게 취해진 제재를 완화하고 대외관계 개선을 통해 경제회복을 도모하는 긍정적 지도력 과시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같은 1인 절대권력의 개인숭배 체제에서 ‘인민이 굶어죽는다’는 것은 전능한 수령에 대한 회의감을 불러일으켜 체제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김정일 저작 등에서도 이 위기의식이 곳곳에 묻어난다. 따라서 김정은 후계시대에는 그 정당성을 높일 목적으로 위기에 처한 북한 경제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개방정책을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국 동북3성과 연계된 발전계획에 많은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김정은 후계체제의 공식화는 그 도덕적 평가와는 상관없이 북한의 필요에 의해서 새로운 대화국면과 협력국면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움직임을 어떻게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도록 하느냐 하는 것은 남한의 몫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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