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공감의 경제학 / 최우성

등록 2010-10-31 19:32

최우성 산업팀장
최우성 산업팀장


1884년 이탈리아 생리학자 안젤로 모소가 선보인 에르고그래프란 이름의 기계장치는 최초의 ‘피로 측정기’다. 기계장치에 딸린 금속장갑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면 반대편에 매달린 금속추가 줄을 통해 손가락을 잡아당겨 인체 근육의 수축과 이완 정도를 측정하는 게 기본 얼개다. 1860~70년 무렵 생리학의 등장은 일차적으로는 의학 연구의 산물이었으되, 사회과학 전반의 지형도를 크게 바꾼 사건이었다. 차츰 제 틀을 잡아가던 당대의 산업사회를 바라보는 프레임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인간이 느끼는 피로란 게으름이나 나태로 말미암은 결과, 달리 말해 노동을 거부하는 정신(의식)의 문제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인체를 탐구 대상으로 삼는 생리학 연구들이 쏟아지면서, 피로란 이제 인간의 물리적 노동력을 뼈대로 굴러가는 산업사회의 ‘근본문제’로 새롭게 정의되기 시작했다. ‘노동하는 사람’에서 ‘노동하는 육체’로 담론의 무게중심이 옮겨간 셈이다. 더군다나 잉여생산물의 분배 원칙이나 작업환경 및 노동조건 등을 둘러싸고 계층 간에 불거진 ‘사회적’ 대립과 갈등도 이제 인간의 육체와 그 육체가 지닌 한계라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문제 틀로 슬그머니 치환돼 버렸다.

몇몇 서구 나라에서 근대적인 사회정책의 뼈대가 형성되던 무렵의 시대상황을 보여주는 이 에피소드엔, 결국 ‘몸뚱어리’가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였던 당대의 사회경제적 조건이 반영돼 있다. 생산요소를 잣대 삼아 제조업이 걸어온 역사를 거칠게 구분해보면, 인간의 육체(노동력)와 이를 대체하는 기계가 중심에 놓였던 1단계(제조업1.0)와 핵심 기술의 비중이 더 커진 2단계(제조업2.0)로 나눠봄직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 몇 년 새 곳곳에선 제조업의 부활을 외치는 목소리가 드높다. 투기적 성향이 강한 금융자본이 주무르던 세계경제가 금융위기 직격탄에 휘청거린 것도 중요한 계기가 됐음에 틀림없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런 흐름 속에서 제조업 역시 다시금 새로운 패러다임의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는 사실이다. 말 그대로 제조업3.0의 싹이 움트고 있는 셈이다.

제조업3.0 시대를 특징짓는 핵심 열쇳말을 꼽으라면 단연 ‘가치’다. 창의성과 책임, 도덕과 윤리 등 인간성의 재발견과 복권은 새로운 흐름의 명백한 징후들이다. 집단지성에 의한 새로운 생산방식, 인간의 창의성을 충분히 고려한 공장설비 설계, 가치와 규범을 우선시하는 투자 및 소비행위 등등 변화의 현장은 널려 있다. 바야흐로 필요 충족의 시대에서 욕구 만족의 시대로 옮겨가는 과정에선,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가르는 경계선마저 여지없이 허물어지고 있다.

이 대목에서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이 최근작 <공감의 시대>를 통해 어두운 창고에서 꺼내 빛을 쏘인 인간 본연의 성향 ‘공감’의 의미는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타자와의 공감이야말로 가치의 싹을 북돋울 가장 소중한 거름이기 때문이다. 이번 금융위기가 일깨워준 교훈이자 그 산물은 아마도 ‘시장의 디레버리징’과 ‘가치의 레버리징’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게다. 맹목적으로 사익만을 좇는 ‘호모에코노미쿠스’(경제인)가 지배하던 세상은 ‘호모엠파티쿠스’(공감인)의 주무대로 한 발짝씩 옮겨갈 태세다.

상대를 배려하고 창의적이며 유연한 경제주체들이 늘어날수록 조직의 생산성도 높아지고, 조직 자체가 더욱 오래도록 지속가능하다는 ‘공감의 경제학’은 그간 익숙했던 기업과 사회의 운영원리를 깨부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기업상, 인재상, 사회상을 요구하고 있다. 공감이 곧 진정한 ‘생존 무기’가 될 공감의 경제, 과연 우리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을까?

최우성 산업팀장morge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