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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백승종의 역설] ‘몸통’의 역사

등록 2010-11-05 19:14

백승종 역사학자
백승종 역사학자
뇌물은 역사의 오점이다. 조선 세종 때 명신 황희 정승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부정부패를 척결해야 할 대사헌의 지위에 있을 때도 청탁을 했고, 정승 시절에도 뇌물을 받았다.(조선왕조실록) 그럼에도 역사는 그를 청백리라 기록했으니, 청렴한 인물이 그렇게도 없었던 것일까.

공신들 중에는 그보다 뇌물을 밝히는 이가 많았다. 중종 때 훈구파 유순정은 너그럽고 부드러운 성품의 소유자로 명성을 얻었지만 속은 음흉했다. 뇌물 수레가 꼬리를 물고 이어져, 값비싼 개꼬리 털로 모자를 엮어 쓸 정도였다.(음애일기) 이런 사람보다 못된 것이 탐욕스런 외척이었다. 명종의 외삼촌 윤원형은 대궐 같은 집을 10채도 더 가졌다. 생활용품도 대궐 것을 뺨칠 정도였다. 그는 무려 20년 동안 뇌물에 탐닉했지만 누구도 감히 문제삼지 못했다.(석담일기) 어리석은 왕과 그 모후 문정왕후가 그에게 권세를 맡겼기 때문이다.

구중궁궐 사람들도 뇌물에 정신이 몽땅 팔렸다. 특히 광해군 때는 매관매직이 성행했다. 벼슬을 사려면 우선 인사담당 관리에게 돈을 주고 천거를 얻은 다음, 대궐 안으로 슬그머니 뇌물을 들여보내 왕의 낙점을 얻는 것이 상례였다. 알짜배기 무관직이나 목사·부사 같은 수령직의 거래가 대개 그런 식으로 이뤄졌다.(춘성록) 돈 주고 산 벼슬자리라 그것이 부패의 온상이었음은 부언할 필요조차 없다.

더러는 뇌물의 마지막 종착역이 임금과 왕후였다. 서포 김만중은 장희빈이 정승 자리를 팔았다며 숙종의 면전에서 항변했다. 조사석이 우의정에 임명되자 항간에는 장희빈 관련설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간재만록) 왕이 총애하는 희빈에 관한 일이라, 김만중은 유배객이 되고 말았다. 구한말 고종과 명성황후도 매관매직으로 거금을 챙겼다고 한다. 최근 어떤 국회의원이 대통령 부인을 무슨 사건의 몸통이라고 말해 세상이 시끄럽다. 구중심처의 일을 내 어찌 알까마는 때가 되면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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