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 감독은 “감독 시대와 기획자의 시대를 거쳐 지금의 한국영화계는 완전히 자본의 시대가 되었다”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시라노;연애조작단>의 김현석 감독과 함께 자본주의 욕망과 미녀사냥을 사냥하다
[한홍구-서해성의 직설]
제26화 시라노의 수줍은 고백 김현석(38) 감독은 ‘살짝 대왕’이다. 녹음을 풀다가 웃었다. ‘살짝’이라는 말이 유난히 튀어나온다. 도합 13번. 살짝 비판적인, 살짝 대리만족, 살짝 잘못하면 등등. 어투 역시 ‘살짝’이라는 의태어를 닮았다. 달변이 아니고 어눌하다. 그가 만든 영화들처럼 수줍다. 80년 광주를 다룬 <스카우트>조차도 ‘살짝’ 우화적으로 접근했으니…. 오늘은 <시라노;연애조작단>(이하 <시라노>, 엄태웅·이민정·최다니엘 출연)을 소재로 삼아 자본주의가 마술처럼 빚어내는 판타지와 욕망을 이야기한다. 지난 9월 개봉한 이 영화는 연애에 서툰 이들을 대신해 비밀작전을 수행하는 연애조작 에이전시를 그렸다. 클라이언트가 의뢰한 작전 대상이 곤혹스럽게도 옛 연인이라는 플롯은 흥미롭다. 시인 검객의 기묘한 연애 이야기를 그린 19세기 프랑스 시극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에서 따온 것으로, 270만여 관객을 불러모았다. 김현석 감독은 2002년 〈YMCA야구단〉으로 입봉했다. <광식이 동생 광태>를 비롯해 총 4편을 연출했고 <공동경비구역JSA> 등 일곱편의 각본을 썼다. 주로 로맨틱코미디 계열의 작품을 연출한 그는 “장르화된 판타지만 만드는 게 아닌가 죄책감이 든다”고 말했다. 경계인으로서 ‘살짝’ 겸손한 말씀이다. 격동기 91학번이지만, 열혈 운동권 선배들과 자유분방 후배들 가운데서 치였다. 좌파는 아니지만 우파도 아니다. 광주항쟁 중심지에서 유년을 보냈지만, 그 강력한 자장 속에 있지도 않다. 그저 꿈꿔왔던 이야기들을 ‘살짝살짝’ 풀어낼 뿐이다. 영화인 시리즈 첫회다. 다음은 <부당거래>의 류승완 감독이다. 진행·정리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서해성(이하 서) 자본주의 애정사냥의 진수를 보여주었죠? 돈만 있으면 애인사냥도 가능하다는. 한홍구(이하 한) 그 작전을 현실에서 구현하려면 얼마나 들까요? 김현석(이하 김) 영화에 견적 내는 장면을 넣었다가 뺐어요. 7천만원이면 너무 작은 거 같기도 하고 1억 단위 넘어가면 거부감 들 것 같기도 하고. 서 결국은 미녀사냥인데(웃음) 한국 자본주의의 공격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녀’ 아니면 ‘마녀’ 취급당하는 한국 사회에서.(웃음) 김 미녀사냥이란 게 로맨틱코미디의 한 특성일 수 있죠. 결국 돈 많은 놈이 이쁜 여자를 차지하는 게 현실이기도 하고. 서 재벌 2세가 미녀 탤런트와 결혼하는 게 이른바 대중의 성적 상징이나 욕망을 독점하는 거거든. 시장화된 몸 자체도 권력이지만 그걸 장악하는 건 더 큰 권력인 거죠. 돈과 집과 여자. 그리고 여자를 태울 가마(자동차). 이민정의 별명 ‘여신포스’엔 무슨 뜻이… 김 젊었을 적에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의 시나리오를 썼는데 찌질한 임창정이 미녀 고소영이랑 결혼하는 거예요. 지금 쓰라고 하면 못 쓸 것 같아요. 그땐 열심히 살다 보면 그렇게 되는 줄 알았어요.(웃음) 한 영화에선 여자가 작전의 대상이지만, 관객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더군요. 김 로맨틱코미디 자체가 여성이 더 많아요. 대개 장르 상업영화 타깃이 20대 초중반 여성이기도 하고. 사실 저는 <광식이 동생 광태> 때도 그렇고 여자 캐릭터를 잘 못 다뤄요. ‘이 사람 영화에는 여자 캐릭터가 대상화돼 있다’고 살짝 비판하는 분도 있는데, 부인 안 해요.(웃음) 암튼 여자들에게 다른 대리만족이 있었던 거 같아요. ‘어, 내가 그랬지’가 아니라 ‘어, 내 남자들은 이랬지’ 하는. 서 자본사회의 대리만족 등 대리 체제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김 아웃소싱이 효과적일 때가 있잖아요. 영화도 시스템적으로 그렇고. 사실 사랑이 대리로 된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이벤트가 대행된다면 모를까. 영화에서도 결국 최다니엘이 자기 이야기를 고백하면서 사랑이 이뤄지죠. 따지고 보면 영화야말로 대리만족의 대표적 장치죠. 거기에 미녀 애인 대리사냥이라는 코드가 들러붙은 거죠. 한 현실도 대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김 정치인이라든지 연예인은 대본이 필요하겠지요. 그 사람의 보이는 모습을 대중이 좋아하니까. 서 이민정을 흔히 ‘여신 포스’라고 하잖아요. ‘여신 포스’란 대중의 이미지 소비가 숭배 단계에 이르렀다는 걸 말해주는 거죠. 예전엔 ‘저 여자 닮고 싶다, 최진실 머리 해주세요’라고 하는 수준이었는데 말이죠. 시라노나 주연 배우나 이쁜 걸로 성공한 거죠? 김 민정씨가 외모로 주목받은 건 사실이죠. 연기도 좋았고. 요즘 관객이 호감 가질 만한 그런 캐스팅을 고려했죠. 서 ‘여신 포스’란 말엔 ‘접근 불가’라는 게 들어 있어요. 이름 짜한 강남의 고등학교 나오고, 좋은 집안 부잣집 딸에, 얼굴 이쁘고, 모든 걸 갖고 있잖아요. 이룰 수 없는 선망은 곧 대중의 좌절이기도 하거든요. 한국에서 1%도 안 되는 강남녀가 영상을 통해 대중을 지배하는 셈이죠. 극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웃음) 한 고현정 같은 경우 자수성가형 케이스라면, 여긴 세상에 떨어질 때부터 그냥. 서 커다란 차이죠. 최진실, 심은하도 가난한 시절이 있었잖아요. 그게 옛날 여배우의 출세 혹은 성장 트렌드였거든. 가난한데 얼굴이 예쁘고 열심히 노력해서 유명한 배우가 됐다는 거. 이효리까지가. 근데 이민정의 경우는 물적 디엔에이가 다른 거죠. 한 과거의 여주인공들은 <별들의 고향>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여자> <서편제> 등등 한의 정서가 있었는데, 이제 한에서 오해로 바뀌어버린.(웃음) 물론 극중의 이민정이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죠. 나름 조개탕 안 먹는 걸로 상처가 표현이 되잖아.(웃음) 여신의 상처가 찌질남의 오해였나? 김 대중 연예인이란 조금만 균열이 생기면 순식간에 안티가 생기는데, 거기서도 마찬가지로 대중은 대리만족을 얻고 있죠. 고소해하면서. 서 이전의 이미지를 부수어야 새 이미지 우상을 얻을 수 있는 법이죠. 대중의 잔인함보다는 소비의 특성이죠. 한 요새는 아이돌들이 너무 쏟아져 나와서 문제 아닌가요. 김 한 달에 한 팀씩 나오기 때문에 진짜 잘 몰라요. 서 대중들이 집중적으로 소비하는 이미지에는 거의 빠짐없이 섹슈얼리티가 따라오죠. 소녀들이 떼로 나오는 게 대세인데, 고도로 훈련되고 정교하게 장치된, 쇼케이스화된 일종의 롤리타주의가 작동하고 있는 거죠. 판타지의 조작… 노무현은 그게 없었다 김 제 나이 또래 팬이 가장 많을걸요. 콘서트 가면 맨 앞줄이 남자 회사원이래요. 한 일곱, 아홉 가지 이미지가 있으니까 염증을 느끼기까지 오래가게 만들어 놓은 거죠. 서 ‘귀여움과 발랄’이라는 나이를 넘어선 소비구조를 열어놓은데다 충족되는 폭이 넓으니 안티가 될 기회가 적은 거죠. 섹슈얼 이미지에 대한 욕망을 연예기획사와 방송이라는 자본이 기획해서 대중을 장악하고 있는 거죠. 그들이 제공한 상품을 판타지로 품고 사는 세상이 된 건데, 꿈이 그걸로 대체되어버리는 건 어쨌든…. 김 판타지 영화를 만드는 저 또한 기획사들에 조종당하고 있었네요?(웃음) 서 이미지 ‘조작단’에게.(웃음) 영화는 기획성이 어떤가요. 김 상대적으로 젤 느려요. 영화는 기획기간이 길잖아요. 단지 어떤 한 가지 특성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이야기가 있어야 하잖아요. 제작과정도 그렇지만 그게 숙성되어야 하고 또 대중이 그걸 알아봐야 하고 하니. 서 ‘꿀벅지’란 말이 유통될 때 대중의 파편화한 이미지 사냥에 공포를 느꼈어요. 다 안 이쁘고 한 부분만 이뻐도 좋다는 거 아니에요. 부위별로…. 토막미인인 셈인데 미적 인식치고는 살벌한 거죠. 한 <시라노>가 좀 극단적인 설정을 해서 보여줬지만, 우리 시대 성공하는 사람과 주목받는 사람의 상당 부분이 기획됐다고도 볼 수 있죠. 연기자도 마찬가지고. 김 노무현은 그게 없었죠. 서 가공되지 않은, 오늘 주제로 빗대면 성형 안 한 미인 같은 맛이 인간 노무현의 매력이었죠. 연예인 기획사 운영이라는 게 강남 아줌마들이 아들딸 과외시키는 거랑 어딘지 닮은 대목이 있어요. 한 ‘스카이’(서울대, 연대, 고대의 은어)는 일 년에 다 합치면 만 명을 뽑지만 연예인 주목받는 건 열 명, 스무 명이지. 기획이 없으면 안 되지만 기획만 갖고는 안 되죠. 서 하메르스회이(덴마크 화가 빌헬름 하메르스회이)의 그림이 <시라노>에 나오던데 이미지 잘 골랐다고 생각했어요. 김 영화 느낌하고 잘 맞는다고 미술감독이 추천했죠. 서 그 양반이 자기 부인 앞태는 거의 안 그리고 뒤태만 그렸거든. 음산한 분위기에 미묘한 섹슈얼리티가 깃들어 있거든요. 걸어가는 사람은 자기 뒤태를 모르잖아요. 맘껏 훔쳐볼 수 있는 시선의 폭력이라고나 할까. 영화가 들여다보기라는 장치이거니와 ‘뒤태’ 노골적으로 훔쳐보는 시대적 감각과 맞아떨어졌다는 뜻이죠. 당대 모순 겨냥한 영화들은 왜 사라졌나 한 연애대행이라는 색다른 주제를 잡았지만 그 속에서도 여러 가지를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공동경비구역JSA>의 각본을 쓰고, <스카우트>를 연출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현실과 대결하려는 모습이 의도적으로 빠져 있다고 할까. 김 정확한 지적입니다. 전작이 <스카우트>였잖아요. 광주에 관해 진실을 담아서 얘기했지만 광주 영화인지도 모르고 온 분이 많아요.(웃음) 임창정 나오는 코미디인 줄 알았다고. 흥행이 좀 안 됐죠. 내 잠재의식 속에 좀 편하게 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듯해요. 하고 싶은 말을 다 드러내지는 않는. 서 엠비시대엔 왜 당면한 모순을 직접 겨냥한 영화가 없을까요. <쉬리> <공동경비구역JSA> <실미도>처럼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들은 민주정권 10년 동안에 나왔어요. 김 한국 영화 침체기에 영화에 투자한 자본들이 실망하고 떠나니까 자본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은 측면이 분명히 있죠. 그러니 아이템들이 획일화가 되고 있죠. 엠비정권이 영향을 준 면도 있겠지만, 덜 상업화된 영화들이 투자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기도 하고요. 한 인터넷에서 놀라운 대중성을 보여준 강풀의 <29년>(만화 원제 <26년>)도 영화화가 될 듯하다 엎어졌잖아요? 김 <29년>은 김아중 캐스팅까지 됐는데, 투자사 쪽에 세무조사 압력이 들어갔다는 소문이 돌았죠. 그저 소문이길 바랄 뿐입니다. 서 <29년>이 주는 씁쓸함은 리얼리즘 영화의 멸종이 정치권력과 무관하기 어렵다는 데 있죠. 다른 한편 판타지가 확장되는 측면이 있는 거거든요. 김 옛날엔 감독 시대였고, 90년대 이후엔 기획자 시대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자본 시대가 됐어요. 투자자들이 다 대기업이고, 그러다 보니 권력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고나 할까. 한 자본이 이념 성향을 노골화하기 시작했고요. 김 영화인들 사이에 우스갯소리가 있어요. 씨제이그룹 이미경 부회장님이 영화를 안 좋아하면 어떻게 될까.(웃음) 서 그나저나 스태프들 처우는 많이 달라졌나요? 김 영화계에서 젤 아쉽게 생각하는 게 그거죠. 한국 영화가 양적·질적으로 최전성기이던 2005년 무렵 복지분배에 힘을 기울이자는 움직임이 있었어요. 스태프노조가 막 출범했는데 하필 스크린쿼터 문제가 터지면서 침체기로 돌아서고 유야무야 돼버렸죠. 스태프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영화계 죽게 생겼으니 우리가 양보하자’는 식이 되고. 참 가슴 아파요. 서 극장에 오랜만에 가보니 지20 홍보를 하더라구요. 광고에 섞여서. 김 나는 4대강 홍보영상을 봤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 않나요? 요즘 문화소비자들이 권력으로 조종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어리석지 않아요. 서 대중들은 그렇게 쉽게 시라노당하지 않는다? 한 1930년대엔 영화가 홍보수단으로 어마어마한 파워를 가졌죠. 이승만 시대에 그렇고 그런 영화를 만들고 단체관람을 시켰죠. 나도 단체로 자주 갔는데, 죄다 재미없는 영화만.(웃음) 한국 영화 중흥기라는 게 그런 것들이 없어지는 시기와 일치해요. 서 영화 속에서 아그네스 발차의 <우리에게 더 좋은 날이 오겠지>라는 음악이 흐르는데, 그리스에서 운동권 노래죠. 김 국민가수이기도 하고. 서 한국으로 치면 조수미+양희은인 아그네스 발차의 앨범 이름이 <조국이 내게 가르쳐준 노래>예요. 그저 붙인 게 아니죠. 유명한 ‘기차는 여덟 시에 떠나네’가 거기 들어 있죠. 작곡한 사람이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라고 영화 <페드라> <희랍인 조르바> 음악을 만들었어요. 좌파 레지스탕스로 파시즘에 대항해 싸웠고, 그리스 군부독재와 맞서 싸운 민주화운동가로 투옥, 연금으로 살았죠. 그래서 한국에서도 탄압을 받았어요. 음악이 지워지는. 한국 사람들이 그리스 가면 고대를 보지 대개 현실은 안 보잖아요. 우리 사회사와 닮았는데. 그런 뜻이 담긴 노래가 <시라노>에서 매개로 흐르는 걸 보면서 참 묘한 느낌이 들었어요. 한 <시라노> 같은 경우 영화 보는 사람들이 입소문으로 오나요, 광고 보고 오나요? 영화계 기웃거려 보면 마케팅 비용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더라고요. 투자-제작-유통의 독점은 창의성을 말살 김 <시라노>의 경우 순제작비가 20억원인데 마케팅 비용이 25억원이에요. 포털 띠광고료 하나만 해도 최소 몇천만원 할걸요? 현장스태프들의 상대적인 박탈감이 있죠. 제작비는 2년 전부터 줄었어요. 광고비는 그대로죠. 정말 중요한 건 배급 싸움이에요. 우리나라는 투자하는 회사에서 극장도 갖고 있잖아요. 할리우드는 그게 안 되는데…. 서 그걸 못하게 하자고 영화인들이 주장해왔죠. 투자-제작-유통 3단계를 재벌이 독점함으로써 콘텐츠 만드는 사람들은 아주 옹색해졌고. 그 과정에서 영화인의 창의성이 말살되고 독립성이 위축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좋은 영화가 나오기 어렵게 되겠죠. 김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는 열악한 환경에서 한국은 정말 잘 하고 있죠. 스크린쿼터 싸움 한 게 4년 전이었죠? 그때 감독조합에서 감독들을 각지로 보내 시국강연을 시켰어요. 저는 연고가 있어서 광주로 내려갔어요. 대학생 대상 강연을 하면서 ‘한국 영화 못 볼지도 모릅니다’라고 했어요. 그런데 다행히 살아남았죠. 그래서 기특한 거예요. 한 한 달 전에 젊은 백수들의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 위원장이 초대손님으로 나왔는데 조합원 하나가 ‘전화비 3만원이 올라갈 게 무서워서 연애를 못했다’고 하더래요. 그들을 그리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김 그런 면에선 너무 장르화된 판타지만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은 있어요. 그런 건 장르영화, 상업영화 틀이 아닌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해요. 서 영화감독 지망생들에게 해줄 말은? 김 특강 가면 ‘책 많이 읽으라’고 하죠. 예전엔 영화감독 되려면 영화만 많이 봐야지 했는데 어떤 점에서 상상력이 갇히더라구요. 책은 상상력을 열어주잖아요. 김승옥, 이성복, 황동규 같은 문인들을 열심히 읽었죠. 서 감성공장 공장장님들을 좋아하는군요.(웃음) 욕망사냥과 대리만족은 앞으로 어떻게 갈까요. 판타지 말이죠. 한 스크린쿼터는 한-미 에프티에이 선결조건으로 나와 있고, 판타지의 강도는 점점 더 높아질 테고, 영상자본은 장사에 몰입할 테고. 서 대중은 위로받지만 동시에 더 허탈해지겠죠. 그 허망함이 리얼리티에 대한 갈증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여깁니다. 원작에서 시라노가 대필의 한계를 넘어야 했듯. 김 그 둘을 결합시켜내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게 제 몫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26화 시라노의 수줍은 고백 김현석(38) 감독은 ‘살짝 대왕’이다. 녹음을 풀다가 웃었다. ‘살짝’이라는 말이 유난히 튀어나온다. 도합 13번. 살짝 비판적인, 살짝 대리만족, 살짝 잘못하면 등등. 어투 역시 ‘살짝’이라는 의태어를 닮았다. 달변이 아니고 어눌하다. 그가 만든 영화들처럼 수줍다. 80년 광주를 다룬 <스카우트>조차도 ‘살짝’ 우화적으로 접근했으니…. 오늘은 <시라노;연애조작단>(이하 <시라노>, 엄태웅·이민정·최다니엘 출연)을 소재로 삼아 자본주의가 마술처럼 빚어내는 판타지와 욕망을 이야기한다. 지난 9월 개봉한 이 영화는 연애에 서툰 이들을 대신해 비밀작전을 수행하는 연애조작 에이전시를 그렸다. 클라이언트가 의뢰한 작전 대상이 곤혹스럽게도 옛 연인이라는 플롯은 흥미롭다. 시인 검객의 기묘한 연애 이야기를 그린 19세기 프랑스 시극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에서 따온 것으로, 270만여 관객을 불러모았다. 김현석 감독은 2002년 〈YMCA야구단〉으로 입봉했다. <광식이 동생 광태>를 비롯해 총 4편을 연출했고 <공동경비구역JSA> 등 일곱편의 각본을 썼다. 주로 로맨틱코미디 계열의 작품을 연출한 그는 “장르화된 판타지만 만드는 게 아닌가 죄책감이 든다”고 말했다. 경계인으로서 ‘살짝’ 겸손한 말씀이다. 격동기 91학번이지만, 열혈 운동권 선배들과 자유분방 후배들 가운데서 치였다. 좌파는 아니지만 우파도 아니다. 광주항쟁 중심지에서 유년을 보냈지만, 그 강력한 자장 속에 있지도 않다. 그저 꿈꿔왔던 이야기들을 ‘살짝살짝’ 풀어낼 뿐이다. 영화인 시리즈 첫회다. 다음은 <부당거래>의 류승완 감독이다. 진행·정리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서해성(이하 서) 자본주의 애정사냥의 진수를 보여주었죠? 돈만 있으면 애인사냥도 가능하다는. 한홍구(이하 한) 그 작전을 현실에서 구현하려면 얼마나 들까요? 김현석(이하 김) 영화에 견적 내는 장면을 넣었다가 뺐어요. 7천만원이면 너무 작은 거 같기도 하고 1억 단위 넘어가면 거부감 들 것 같기도 하고. 서 결국은 미녀사냥인데(웃음) 한국 자본주의의 공격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녀’ 아니면 ‘마녀’ 취급당하는 한국 사회에서.(웃음) 김 미녀사냥이란 게 로맨틱코미디의 한 특성일 수 있죠. 결국 돈 많은 놈이 이쁜 여자를 차지하는 게 현실이기도 하고. 서 재벌 2세가 미녀 탤런트와 결혼하는 게 이른바 대중의 성적 상징이나 욕망을 독점하는 거거든. 시장화된 몸 자체도 권력이지만 그걸 장악하는 건 더 큰 권력인 거죠. 돈과 집과 여자. 그리고 여자를 태울 가마(자동차). 이민정의 별명 ‘여신포스’엔 무슨 뜻이… 김 젊었을 적에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의 시나리오를 썼는데 찌질한 임창정이 미녀 고소영이랑 결혼하는 거예요. 지금 쓰라고 하면 못 쓸 것 같아요. 그땐 열심히 살다 보면 그렇게 되는 줄 알았어요.(웃음) 한 영화에선 여자가 작전의 대상이지만, 관객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더군요. 김 로맨틱코미디 자체가 여성이 더 많아요. 대개 장르 상업영화 타깃이 20대 초중반 여성이기도 하고. 사실 저는 <광식이 동생 광태> 때도 그렇고 여자 캐릭터를 잘 못 다뤄요. ‘이 사람 영화에는 여자 캐릭터가 대상화돼 있다’고 살짝 비판하는 분도 있는데, 부인 안 해요.(웃음) 암튼 여자들에게 다른 대리만족이 있었던 거 같아요. ‘어, 내가 그랬지’가 아니라 ‘어, 내 남자들은 이랬지’ 하는. 서 자본사회의 대리만족 등 대리 체제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김 아웃소싱이 효과적일 때가 있잖아요. 영화도 시스템적으로 그렇고. 사실 사랑이 대리로 된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이벤트가 대행된다면 모를까. 영화에서도 결국 최다니엘이 자기 이야기를 고백하면서 사랑이 이뤄지죠. 따지고 보면 영화야말로 대리만족의 대표적 장치죠. 거기에 미녀 애인 대리사냥이라는 코드가 들러붙은 거죠. 한 현실도 대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김 정치인이라든지 연예인은 대본이 필요하겠지요. 그 사람의 보이는 모습을 대중이 좋아하니까. 서 이민정을 흔히 ‘여신 포스’라고 하잖아요. ‘여신 포스’란 대중의 이미지 소비가 숭배 단계에 이르렀다는 걸 말해주는 거죠. 예전엔 ‘저 여자 닮고 싶다, 최진실 머리 해주세요’라고 하는 수준이었는데 말이죠. 시라노나 주연 배우나 이쁜 걸로 성공한 거죠? 김 민정씨가 외모로 주목받은 건 사실이죠. 연기도 좋았고. 요즘 관객이 호감 가질 만한 그런 캐스팅을 고려했죠. 서 ‘여신 포스’란 말엔 ‘접근 불가’라는 게 들어 있어요. 이름 짜한 강남의 고등학교 나오고, 좋은 집안 부잣집 딸에, 얼굴 이쁘고, 모든 걸 갖고 있잖아요. 이룰 수 없는 선망은 곧 대중의 좌절이기도 하거든요. 한국에서 1%도 안 되는 강남녀가 영상을 통해 대중을 지배하는 셈이죠. 극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웃음) 한 고현정 같은 경우 자수성가형 케이스라면, 여긴 세상에 떨어질 때부터 그냥. 서 커다란 차이죠. 최진실, 심은하도 가난한 시절이 있었잖아요. 그게 옛날 여배우의 출세 혹은 성장 트렌드였거든. 가난한데 얼굴이 예쁘고 열심히 노력해서 유명한 배우가 됐다는 거. 이효리까지가. 근데 이민정의 경우는 물적 디엔에이가 다른 거죠. 한 과거의 여주인공들은 <별들의 고향>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여자> <서편제> 등등 한의 정서가 있었는데, 이제 한에서 오해로 바뀌어버린.(웃음) 물론 극중의 이민정이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죠. 나름 조개탕 안 먹는 걸로 상처가 표현이 되잖아.(웃음) 여신의 상처가 찌질남의 오해였나? 김 대중 연예인이란 조금만 균열이 생기면 순식간에 안티가 생기는데, 거기서도 마찬가지로 대중은 대리만족을 얻고 있죠. 고소해하면서. 서 이전의 이미지를 부수어야 새 이미지 우상을 얻을 수 있는 법이죠. 대중의 잔인함보다는 소비의 특성이죠. 한 요새는 아이돌들이 너무 쏟아져 나와서 문제 아닌가요. 김 한 달에 한 팀씩 나오기 때문에 진짜 잘 몰라요. 서 대중들이 집중적으로 소비하는 이미지에는 거의 빠짐없이 섹슈얼리티가 따라오죠. 소녀들이 떼로 나오는 게 대세인데, 고도로 훈련되고 정교하게 장치된, 쇼케이스화된 일종의 롤리타주의가 작동하고 있는 거죠. 판타지의 조작… 노무현은 그게 없었다 김 제 나이 또래 팬이 가장 많을걸요. 콘서트 가면 맨 앞줄이 남자 회사원이래요. 한 일곱, 아홉 가지 이미지가 있으니까 염증을 느끼기까지 오래가게 만들어 놓은 거죠. 서 ‘귀여움과 발랄’이라는 나이를 넘어선 소비구조를 열어놓은데다 충족되는 폭이 넓으니 안티가 될 기회가 적은 거죠. 섹슈얼 이미지에 대한 욕망을 연예기획사와 방송이라는 자본이 기획해서 대중을 장악하고 있는 거죠. 그들이 제공한 상품을 판타지로 품고 사는 세상이 된 건데, 꿈이 그걸로 대체되어버리는 건 어쨌든…. 김 판타지 영화를 만드는 저 또한 기획사들에 조종당하고 있었네요?(웃음) 서 이미지 ‘조작단’에게.(웃음) 영화는 기획성이 어떤가요. 김 상대적으로 젤 느려요. 영화는 기획기간이 길잖아요. 단지 어떤 한 가지 특성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이야기가 있어야 하잖아요. 제작과정도 그렇지만 그게 숙성되어야 하고 또 대중이 그걸 알아봐야 하고 하니. 서 ‘꿀벅지’란 말이 유통될 때 대중의 파편화한 이미지 사냥에 공포를 느꼈어요. 다 안 이쁘고 한 부분만 이뻐도 좋다는 거 아니에요. 부위별로…. 토막미인인 셈인데 미적 인식치고는 살벌한 거죠. 한 <시라노>가 좀 극단적인 설정을 해서 보여줬지만, 우리 시대 성공하는 사람과 주목받는 사람의 상당 부분이 기획됐다고도 볼 수 있죠. 연기자도 마찬가지고. 김 노무현은 그게 없었죠. 서 가공되지 않은, 오늘 주제로 빗대면 성형 안 한 미인 같은 맛이 인간 노무현의 매력이었죠. 연예인 기획사 운영이라는 게 강남 아줌마들이 아들딸 과외시키는 거랑 어딘지 닮은 대목이 있어요. 한 ‘스카이’(서울대, 연대, 고대의 은어)는 일 년에 다 합치면 만 명을 뽑지만 연예인 주목받는 건 열 명, 스무 명이지. 기획이 없으면 안 되지만 기획만 갖고는 안 되죠. 서 하메르스회이(덴마크 화가 빌헬름 하메르스회이)의 그림이 <시라노>에 나오던데 이미지 잘 골랐다고 생각했어요. 김 영화 느낌하고 잘 맞는다고 미술감독이 추천했죠. 서 그 양반이 자기 부인 앞태는 거의 안 그리고 뒤태만 그렸거든. 음산한 분위기에 미묘한 섹슈얼리티가 깃들어 있거든요. 걸어가는 사람은 자기 뒤태를 모르잖아요. 맘껏 훔쳐볼 수 있는 시선의 폭력이라고나 할까. 영화가 들여다보기라는 장치이거니와 ‘뒤태’ 노골적으로 훔쳐보는 시대적 감각과 맞아떨어졌다는 뜻이죠. 당대 모순 겨냥한 영화들은 왜 사라졌나 한 연애대행이라는 색다른 주제를 잡았지만 그 속에서도 여러 가지를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공동경비구역JSA>의 각본을 쓰고, <스카우트>를 연출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현실과 대결하려는 모습이 의도적으로 빠져 있다고 할까. 김 정확한 지적입니다. 전작이 <스카우트>였잖아요. 광주에 관해 진실을 담아서 얘기했지만 광주 영화인지도 모르고 온 분이 많아요.(웃음) 임창정 나오는 코미디인 줄 알았다고. 흥행이 좀 안 됐죠. 내 잠재의식 속에 좀 편하게 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듯해요. 하고 싶은 말을 다 드러내지는 않는. 서 엠비시대엔 왜 당면한 모순을 직접 겨냥한 영화가 없을까요. <쉬리> <공동경비구역JSA> <실미도>처럼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들은 민주정권 10년 동안에 나왔어요. 김 한국 영화 침체기에 영화에 투자한 자본들이 실망하고 떠나니까 자본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은 측면이 분명히 있죠. 그러니 아이템들이 획일화가 되고 있죠. 엠비정권이 영향을 준 면도 있겠지만, 덜 상업화된 영화들이 투자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기도 하고요. 한 인터넷에서 놀라운 대중성을 보여준 강풀의 <29년>(만화 원제 <26년>)도 영화화가 될 듯하다 엎어졌잖아요? 김 <29년>은 김아중 캐스팅까지 됐는데, 투자사 쪽에 세무조사 압력이 들어갔다는 소문이 돌았죠. 그저 소문이길 바랄 뿐입니다. 서 <29년>이 주는 씁쓸함은 리얼리즘 영화의 멸종이 정치권력과 무관하기 어렵다는 데 있죠. 다른 한편 판타지가 확장되는 측면이 있는 거거든요. 김 옛날엔 감독 시대였고, 90년대 이후엔 기획자 시대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자본 시대가 됐어요. 투자자들이 다 대기업이고, 그러다 보니 권력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고나 할까. 한 자본이 이념 성향을 노골화하기 시작했고요. 김 영화인들 사이에 우스갯소리가 있어요. 씨제이그룹 이미경 부회장님이 영화를 안 좋아하면 어떻게 될까.(웃음) 서 그나저나 스태프들 처우는 많이 달라졌나요? 김 영화계에서 젤 아쉽게 생각하는 게 그거죠. 한국 영화가 양적·질적으로 최전성기이던 2005년 무렵 복지분배에 힘을 기울이자는 움직임이 있었어요. 스태프노조가 막 출범했는데 하필 스크린쿼터 문제가 터지면서 침체기로 돌아서고 유야무야 돼버렸죠. 스태프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영화계 죽게 생겼으니 우리가 양보하자’는 식이 되고. 참 가슴 아파요. 서 극장에 오랜만에 가보니 지20 홍보를 하더라구요. 광고에 섞여서. 김 나는 4대강 홍보영상을 봤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 않나요? 요즘 문화소비자들이 권력으로 조종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어리석지 않아요. 서 대중들은 그렇게 쉽게 시라노당하지 않는다? 한 1930년대엔 영화가 홍보수단으로 어마어마한 파워를 가졌죠. 이승만 시대에 그렇고 그런 영화를 만들고 단체관람을 시켰죠. 나도 단체로 자주 갔는데, 죄다 재미없는 영화만.(웃음) 한국 영화 중흥기라는 게 그런 것들이 없어지는 시기와 일치해요. 서 영화 속에서 아그네스 발차의 <우리에게 더 좋은 날이 오겠지>라는 음악이 흐르는데, 그리스에서 운동권 노래죠. 김 국민가수이기도 하고. 서 한국으로 치면 조수미+양희은인 아그네스 발차의 앨범 이름이 <조국이 내게 가르쳐준 노래>예요. 그저 붙인 게 아니죠. 유명한 ‘기차는 여덟 시에 떠나네’가 거기 들어 있죠. 작곡한 사람이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라고 영화 <페드라> <희랍인 조르바> 음악을 만들었어요. 좌파 레지스탕스로 파시즘에 대항해 싸웠고, 그리스 군부독재와 맞서 싸운 민주화운동가로 투옥, 연금으로 살았죠. 그래서 한국에서도 탄압을 받았어요. 음악이 지워지는. 한국 사람들이 그리스 가면 고대를 보지 대개 현실은 안 보잖아요. 우리 사회사와 닮았는데. 그런 뜻이 담긴 노래가 <시라노>에서 매개로 흐르는 걸 보면서 참 묘한 느낌이 들었어요. 한 <시라노> 같은 경우 영화 보는 사람들이 입소문으로 오나요, 광고 보고 오나요? 영화계 기웃거려 보면 마케팅 비용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더라고요. 투자-제작-유통의 독점은 창의성을 말살 김 <시라노>의 경우 순제작비가 20억원인데 마케팅 비용이 25억원이에요. 포털 띠광고료 하나만 해도 최소 몇천만원 할걸요? 현장스태프들의 상대적인 박탈감이 있죠. 제작비는 2년 전부터 줄었어요. 광고비는 그대로죠. 정말 중요한 건 배급 싸움이에요. 우리나라는 투자하는 회사에서 극장도 갖고 있잖아요. 할리우드는 그게 안 되는데…. 서 그걸 못하게 하자고 영화인들이 주장해왔죠. 투자-제작-유통 3단계를 재벌이 독점함으로써 콘텐츠 만드는 사람들은 아주 옹색해졌고. 그 과정에서 영화인의 창의성이 말살되고 독립성이 위축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좋은 영화가 나오기 어렵게 되겠죠. 김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는 열악한 환경에서 한국은 정말 잘 하고 있죠. 스크린쿼터 싸움 한 게 4년 전이었죠? 그때 감독조합에서 감독들을 각지로 보내 시국강연을 시켰어요. 저는 연고가 있어서 광주로 내려갔어요. 대학생 대상 강연을 하면서 ‘한국 영화 못 볼지도 모릅니다’라고 했어요. 그런데 다행히 살아남았죠. 그래서 기특한 거예요. 한 한 달 전에 젊은 백수들의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 위원장이 초대손님으로 나왔는데 조합원 하나가 ‘전화비 3만원이 올라갈 게 무서워서 연애를 못했다’고 하더래요. 그들을 그리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김 그런 면에선 너무 장르화된 판타지만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은 있어요. 그런 건 장르영화, 상업영화 틀이 아닌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해요. 서 영화감독 지망생들에게 해줄 말은? 김 특강 가면 ‘책 많이 읽으라’고 하죠. 예전엔 영화감독 되려면 영화만 많이 봐야지 했는데 어떤 점에서 상상력이 갇히더라구요. 책은 상상력을 열어주잖아요. 김승옥, 이성복, 황동규 같은 문인들을 열심히 읽었죠. 서 감성공장 공장장님들을 좋아하는군요.(웃음) 욕망사냥과 대리만족은 앞으로 어떻게 갈까요. 판타지 말이죠. 한 스크린쿼터는 한-미 에프티에이 선결조건으로 나와 있고, 판타지의 강도는 점점 더 높아질 테고, 영상자본은 장사에 몰입할 테고. 서 대중은 위로받지만 동시에 더 허탈해지겠죠. 그 허망함이 리얼리티에 대한 갈증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여깁니다. 원작에서 시라노가 대필의 한계를 넘어야 했듯. 김 그 둘을 결합시켜내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게 제 몫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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